가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우리 경제에 `화약고'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가뜩 경기 침체와 자산가격 하락, 실질소득 감소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가운데 급증하는 가계 빚은 가계의 상환 부담을 높이고 소비침체와 내수 경기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고용 불안이 계속되면서 취약 계층을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부실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가계대출 부실은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져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 급증하는 빚..상환 능력 악화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계신용(가계대출과 판매신용) 잔액은 전년보다 57조6천억 원이 증가한 688조2천억 원이며, 가구당 빚은 4천128만 원으로 집계됐다.

연간 가계신용 증가액은 2005년 46조8천억 원에서 부동산 붐이 일었던 2006년 60조5천억 원으로 급증했다가 2007년 48조7천억원으로 둔화한 뒤 작년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불안과 경기침체, 부동산 거래 위축에도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난 것이 전체 가계대출 증가세에 영향을 미쳤다.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06년 26조9천억 원에서 2007년 4조5천억 원으로 급감했으나 작년에 18조 원으로 급증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실시된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대책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채 상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개인의 금융자산을 금융부채로 나눈 비율은 작년 9월 말 기준 2.15배를 기록해 2003년 3월(2.14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수치는 글로벌 금융불안의 진앙인 미국 (3.10)을 비롯해 일본(4.37), 영국(2.49)보다 낮고 호주(1.70)보다는 높다.

특히 작년 4분기 때 주가가 급락해 금융자산 평가액은 줄고 금융부채는 늘어난 것으로 추정돼 상환능력은 더욱 악화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다른 지표인 개인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비율도 2005년말 1.35배, 2006년말 1.43배, 2007년말 1.48배로 해마다 상승 추세에 있다.

이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가용 소득에 비해 부채 비율이 높아 상환 능력이 나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 관계자는 "정책금리 인하 등으로 최근 가계대출 금리가 떨어지고 있지만, 경기침체로 개인소득이 줄고 자산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에 가계의 채무 부담 능력은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대출 부실 우려 갈수록 커져
가계대출 부실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가계대출 연체율은 작년 말 0.60%로 전년 말보다 0.05%포인트 상승했고,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은 전년 말 대비 0.05%포인트 상승한 0.48%를 기록 중이다.

부동산 침체와 실질소득 감소 등에도 가계대출 연체율이 1% 미만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대손상각과 매각 등을 통해 대거 정리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 서민층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작년 6월 말 기준 가계 가처분소득에 대한 이자 지급 비중은 9.8%였다.

즉 가계가 쓸 수 있는 소득이 100만 원이라면 10만 원 정도를 이자를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은 6.8%로 한자릿수를 유지했지만 신협, 새마을금고, 상호금융 등 서민금융 기관의 대출 증가액은 16.4%로 두자릿수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별 가계대출 잔액 비중은 예금은행이 2007년 말 61.1%에서 2008년 말 59.9%로 하락했지만, 신용협동기구는 17.0%에서 18.2%로 상승했다.

이는 영세 상인, 비정규직 등이 고용 불안 등으로 타격을 입을 경우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며 "지금처럼 경기와 고용이 좋지 않아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계대출이 빠르게 늘어나면 가계 신용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한은 관계자는 "가계대출의 경우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에 맞춰 시행됐기 때문에 우리나라 부채의 질은 다른 국가들보다 양호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 침체 가속 악순환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가계 빚은 경기 침체를 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 대상이다.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되면 결국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내수 위축, 경기 침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앞으로 구조조정이 가속화하고 실업이 발생하면 부채상환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결국 우리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가계들이 낮은 금리로 대출을 갈아탈 수 있도록 해주거나 가계의 소비를 보전해 주는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 실장도 "가계 빚이 많은 상태에서 앞으로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 우리 경제도 미국 경제와 똑같은 경로로 나빠질 수 있다"며 "사전에 부채 조정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며 앞으로 일어날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상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근본적인 대책은 기업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려면 고용시장의 유연성도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