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자산 1000억달러 이상인 대형 은행 18곳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에 나섬에 따라 미 금융권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이 테스트가 구제금융 투입이나 국유화 여부 등 금융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금융감독 기구들은 23일 워싱턴에서 공동 성명을 내고 "스트레스 테스트 이후 자금을 필요로 하는 은행들은 추가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며 25일부터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에 나선다고 밝혔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경기침체 등 외부 충격 속에서 금융사의 잠재적 취약성을 측정하는 기법이다. 금융사가 잠재적 부실을 감당할 정도로 충분한 자본을 갖고 있는지 심사하는 게 핵심이다.

통상 경기침체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가계총자산 등 거시경제 시나리오를 작성한 뒤 이에 따른 충격이 금융사에 미치는 여파를 평가하는 모델을 만들고,이 모델을 활용해 금융사별 영향을 측정한다. 측정 결과 얻어진 손실을 현재 자본 규모와 비교해 해당 금융사의 취약성을 평가한다.

손실을 감당하고도 기업 및 가계에 자금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금융사는 독자 생존이 가능한 곳으로 판정받는다. 손실 규모가 커서 경기가 살아나도 대출을 할 수 없는 금융사는 영업을 정지시키고 정부가 떠맡아 제3자에 매각하는 방안이 모색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가 살아나면 정상적인 영업이 가능한 곳은 추가로 구제금융을 지원하게 된다. 자금 지원은 '오직 필요한 경우에만'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의무전환 우선주'를 매입해주는 형태로 이뤄진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이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웰스파고 JP모건체이스 등 4개 대형 은행을 대상으로 자체 기준을 만들어 스트레스 테스트를 해본 결과,JP모건체이스를 제외한 나머지 3개 은행이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타임은 자본을 자산으로 나눈 비율을 잣대로 사용했다.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지난 10일 금융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일관되고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기준을 만들어 적용할 것이란 원칙만을 밝혔을 뿐 세부 사항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시장의 관심은 어떤 회계 기준을 적용하느냐다.

시장에서는 은행 자본건전성 평가 척도의 하나인 유형납입자본(TCE · Tangible Common Equity) 비율을 적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은행들은 TCE보다는 국제결제은행(BIS)이 만든 기본자본(티어 1) 비율로 건전성을 평가해왔다. 티어 1은 6%만 넘으면 기준이 충족된다. 씨티도 이 기준을 충족시킨다.

하지만 미 감독당국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하면서 기본자본의 절반은 보통주여야 하는 TCE를 적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뚜렷한 자본 성격이 있는 보통주에 기초해 미래 재무구조를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씨티가 정부 측에 정부가 가진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우선주가 보통주 혹은 전환우선주로 바뀌면 씨티의 TCE는 기존의 1.5%에서 4%대로 높아진다. 3% 이상이면 안전한 곳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미래 자산손실 산정 기간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도 관심거리다.

재무부는 경제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란 가정하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평가할 계획이다. 때문에 통상적인 평가 기간(1년)보다 긴 2년 정도 발생할 손실을 따져볼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파생상품과 장부외자산의 손실을 어떤 식으로 반영하느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평가 기간은 적어도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상 최대폭의 하락률을 보인 미국 주택가격 폭락세도 대형 은행들의 자산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4일 미국 20개 대도시 지역의 주택 가격을 보여주는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가 지난해 12월 전년 동기 대비 18.5% 하락했다고 밝혔다. 주택 압류가 급증하고 판매가 급감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로써 미국 주택가격 하락률은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연속 사상 최대를 지속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유병연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