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조선사에 이어 구조조정 대상으로 떠오른 해운업에 대해 정부가 아직까지 처방책을 내놓지 않아 시장의 불안감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해운업계의 7위 업체인 삼선로직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후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권은 해운업에 대한 모니터링만 하고 있을뿐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운업황의 부진이 심화하고 해외 해운업체의 도산도 잇따르는 만큼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해운업 구조조정 `머뭇'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작년 말부터 해운업에 대한 모니터링에 착수했으나 아직 뚜렷한 처방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3월 중 '해운산업 실무협의회'를 열어 위기 극복 방안이나 부실 방지 대책 등을 논의키로 했으나 큰 기대는 어려운 실정이다.

실무협의회는 선주협회, 조선협회, 금융회사 등으로 구성돼 정보 교류 수준의 활동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들도 해운업체들의 재무상황을 점검하고 있으나 아직 구조조정에는 나서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은 해운업종에 대해 작년 말과 1월 말 연체율을 분석해 조만간 특별관리업종에 포함할지를 결정키로 했다.

특별관리업종에 포함되면 영업점장 전결로 5억 원 이상 대출이 불가능해지는 데다 본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대출받기 어려워진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기업영업지점장(RM)들이 해운업종을 면밀하게 관리하고 있다"며 "해운업 전체에 대한 대출을 중단할지, 대출 건별로 다룰지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최근 해운업체들로부터 자료를 받아 점검하고 있다"며 "연말 결산자료가 나와야 하는 데다, 건설.조선사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도 있어 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은 3월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도 "해운업은 업종 특성을 볼 때 문제가 생길만한 한두 곳을 신용평가해서 구조조정을 하는 방식은 맞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구조조정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처럼 구조조정이 쉽지 않은 것은 해운업체 간에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는 재용선 관행 때문에 어느 한 곳이 쓰러지면 연관된 다른 업체들도 줄줄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국내 해운업계는 170개 업체 중에서 150개 업체가 상위 20개사의 하도급 업체여서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운업체들은 빌린 배를 다시 빌려주면서 재용선료 문제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국내외 선사 간 채무 불이행도 속출하고 법적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며 "해외업체가 용선료를 지불하지 못하기만 해도 국내 업체가 도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위기감 고조.."처방 서둘러야"
해운업계의 위기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작년 말 업계 순위 17위인 파크로드가 채무 불이행 선언을 한 데 이어 지난 6일 삼선로직스가 서울지방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해운업체가 등장한 것은 작년 하반기 해운업이 불황에 빠진 이후 처음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삼선로직스가 작년에 파산한 스위스 아르마다 싱가포르 법인으로부터 4천500만 달러의 용선료를 받지 못했다"며 "아르마다는 국내 10위권 내 다른 해운사들과도 거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세계 26개 항로의 벌크화물 운임과 용선료 등을 종합한 BDI지수(발틱운임지수)는 작년 5월 말 11,000선까지 치솟았다가 12월3일 680까지 떨어진 뒤 최근 가까스로 1,700선까지 올라온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해운업계가 전반적으로 정상화되려면 BDI지수가 3,000~3,500선까지 올라가야 한다"며 "현재 170개 업체 모두 어려움에 부닥친 상태여서 추가 도산 업체가 발생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대규모 독일계 펀드가 국내에 들어와 4분의 1 가격에 멀쩡한 배를 사들이려는 시도를 하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은 부도를 면하기 위해 헐값에라도 배를 팔아야 하는 상황이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세계 교역량 감소세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어 일부 해운사들은 건설.조선사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만기 연장 등으로 구조조정의 어려움이 있지만 일이 커지기 전에 자체적으로 나서 옥석을 가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최현석 기자 indigo@yna.co.krharri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