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기업의 종신고용은 1990년대 10년간 일본 경제에 들이닥친 장기 불황 속에서도 굳건히 지속됐던 일본 경영의 특징이자 자존심이다.

일본의 우수 기업 중 하나인 캐논의 미타라이 후지오 회장은 장기 불황을 이겨낸 직후인 2002년 3월 "종신고용제는 궁극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귀중한 경쟁우위 요소가 되는 것"이라고 역설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작년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는 일본의 종신고용제를 위기에 빠뜨렸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일본 기업이 글로벌 경제의 악화로 수출길이 줄어 들고,더불어 엔화 가치의 상승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직원의 대량 해고에 나서며 종신고용제를 포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장기 불황 속에서도 종신고용제를 고수해 오던 캐논조차도 지난 연말 1100여명의 직원을 해고했고,파나소닉 소니 NEC 히타치는 물론 일본의 대표적인 글로벌 우량기업인 도요타자동차도 최근 대량 해고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러한 고용 불안의 한파가 한국 기업들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금융 위기로 직격탄을 맞은 금융권이나 건설업을 비롯한 기업들이 올해 들어 감원에 나섰다. 올 한 해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감원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그러나 경기 불황에 대비한 감원은 원가 절감과 유동성 확보를 위한 단기 대응책에 불과하며,불황의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는 경쟁력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이 종신고용제를 포기하는 지금이 한국 기업들에 있어서는 고용 유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방안을 추진해 일본 기업에 앞서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고용 유지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사례가 바로 보잉이다. 장기간에 걸쳐 세계 민간 항공기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보잉은 수요감소 주기를 맞은 1993년 발주가 대량으로 취소되자 생산을 40%,인원을 35% 줄였다. 인원 삭감의 일환으로 6억달러의 경비가 소요된 조기퇴직 우대 제도를 만들어 특수 기능직 직원 9000명을 해고했다.

그런데 1996년 초 수주 사이클이 반전해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을 때 보잉은 숙련된 조립공의 부족으로 생산과 납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으며,이를 만회해 생산 정상화를 갖추기까지 30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입게 됐다. 보잉은 자체 보고에서 '수천명을 신규로 채용한 데 따른 생산의 비효율'을 손실의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재정적 손실보다 더욱 심각한 피해는 보잉의 경쟁 상대인 에어버스에 민간 항공기 시장의 점유율을 잠식당하는 계기가 됐으며 2000년 중반에는 에어버스에 수주액 기준으로 순위가 밀리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보잉은 1993년 불황에 직면했을 때 1~2년간 주가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배당을 줄이며 경영진의 보수를 삭감하는 경비 절감 등을 통해 직원들의 해고를 방지할 수도 있었다. 보잉이 직원 고용을 유지했으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입을 일도 없었으며,에어버스에 추월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황이 오더라도 고용을 유지하고 과잉 인력을 부담하는 비용을 흡수하는 방안을 수행한다면 경제가 회복될 때 경쟁우위를 손쉽게 확보해 경쟁사에 비해 시장점유율을 압도적으로 높일 수가 있다.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가장 중요한 이해 관계자는 직원들이다. 직원의 기술과 경험,공급업체나 고객에 대한 지식,기업에 대한 충성심이 유지될수록 경쟁우위를 최대한 늘리는 데 유리하다. 직원의 대량 해고는 무리한 감량으로 군살뿐만 아니라 경쟁력을 지탱하는 근육마저 잃게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