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촨즈가 강호(江湖)로 다시 나왔다. '중국과 홍콩 언론들은 6일 중국 최대 PC업체 롄샹(레노버)의 창업자 류촨즈(64)가 전날 회장으로 복귀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2005년 IBM PC사업 인수를 진두 지휘한 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류촨즈가 돌아온 것은 위기에 몰린 롄샹의 구원투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롄샹은 지난 3분기(2008년 9~12월) 매출이 35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22% 줄었으며 9671만달러의 영업 적자를 냈다. 롄샹이 적자를 낸 건 11분기 만에 처음이다. 지난달에는 전 직원의 11%에 해당하는 2500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류 회장은 세계 2위 PC업체 델 출신인 윌리엄 아멜리오가 맡고 있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양위안칭 회장에게 다시 맡도록 했다. 홍콩 명보는 류 회장의 복귀를 애플의 스티브 잡스,델의 마이클 델,야후의 제리 양처럼 어려움에 빠진 기업을 기사 회생시키기 위해 창업자가 강호에 다시 나온 것으로 비유했다.

류 회장은 회장 복귀와 함께 월스트리트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마켓에 다시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대기업 고객에 역점을 둔 과거 IBM식 해외 사업이 최근의 글로벌 경기침체에 악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울프그룹 아시아의 데이비드 울프 CEO는"중국에 다시 집중하는 것은 재무적으로는 긍정적이지만 왜 IBM PC사업을 인수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류 회장은 중국 정보기술(IT)의'대부''전설' 등으로 통한다. 1968년 시안 군사전신공정학원을 졸업한 뒤 청두의 연구소에 배치됐지만 수개월 후 문화혁명에 휩쓸려 허난성의 농장으로 내려간 그는 덩샤오핑이 개혁 · 개방을 내건 이듬해인 1979년 중국과학원 컴퓨터기술연구소로 발령받으면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군 예산을 삭감한 중국 정부는 젊은 과학자들에게 알아서 살 길을 찾으라고 권했고 그는 1984년 연구소 경비초소로 쓰였던 23㎡(7평)짜리 벽돌 건물에서 10명의 동료와 함께 창업했다.

아버지 양복을 빌려 입고 IBM PC 수입대리상 회의에도 참석했던 그는 20여년 뒤인 2005년 IBM PC사업을 사들이며 롄샹을 세계 4위 PC업체로 올려놓았다. 세계 경제가 최악의 침체에 빠진 지금 그의 신화가 재현될지 주목된다. 창업자의 복귀가 꼭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잡스만 1997년 애플 CEO로 복귀한 이후 주가를 14배 끌어올렸을 뿐 델은 여전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제리 양은 1년 반 만에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