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변화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인사다. 성과가 나빠 사업을 철수하거나 축소하게 되면 조직 구성원을 내보내거나 재배치하게 된다. 또 새 사업을 시작할 때는 외부 영입을 추진하게 된다. 임직원의 이동은 기업의 변화를 보여주는 핵심 징표다. 선발 기업의 인사가 업계와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헤드헌팅 회사들이 기업의 변화에 밝은 것도 기업 임직원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기업의 인재 추천 요청을 확인하기 위해 회사 관계자를 만나거나,이직을 원하는 후보자를 인터뷰하다 보면 그가 속해 있는 직장의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된다.

최근 실시된 삼성그룹의 사장과 임원 인사도 조직과 사업의 변화 방향을 가늠하게 한다. 삼성의 사장 및 임원 인사를 보면 불황기의 일반 전략에 맞게 비대했던 조직이 축소됐고,이건희 회장에서 이재용 전무로 경영권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수뇌부의 세대 교체가 대폭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전자에서 황창규 사장 등 엔지니어 출신 경영자의 후퇴와 최지성 사장을 비롯한 마케팅 세일즈 출신의 부상이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 취임 이후 20여년간 강진구-김광호-윤종용 등 엔지니어 출신 최고경영자가 조직을 이끌었다. 사장단의 70~80%는 항상 이공계 출신이었다. 오늘의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것도 이들 '테크노 경영진'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인사로 삼성전자에서 마케팅과 세일즈 출신의 최고경영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최지성 사장은 6개 주요 사업부가 속해 있는 DMC부문장을 맡았다. 사장단에 이은 임원 후속 인사에서도 마케팅과 세일즈 출신이 약진했다.

최 사장 등의 부상은 뛰어난 성과 덕택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들이 삼성전자가 처한 현 상황을 타개하는 데 필요할 뿐 아니라 앞으로 조직 운영과 사업 전개 방향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금껏 부품부터 완제품까지를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수직 계열화를 이룬 '기술과 제조'로 승부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장과 임원 인사를 통해 '마케팅과 세일즈,디자인'으로 핵심 무기를 바꾸려 하고 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소니와 애플 등 세계적 전자회사들은 이미 제조와 기술을 벗어나 브랜드와 디자인에 기반한 마케팅과 세일즈 중심의 경영 전략을 펼치고 있다.

물론 삼성전자도 이미 조금씩 방향을 틀어 왔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방향 전환을 더 빠르게,더 강하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움직임은 한국 기업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 전례를 감안할 때 앞으로 한국의 대기업들은 속속 글로벌 마케팅과 세일즈 중심의 전략을 강화할 것이고,이에 따라 기업의 내부 권력과 핵심 인재의 이동도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된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