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에 '순위 경쟁'이 불 붙었다. 신호탄은 대우조선해양이 쏘아 올렸다.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작년 말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섰다고 주장한 것.삼성중공업은 발끈했다. 조선회사 순위를 재는 잣대가 불합리하다는 항변이다. '후발주자'인 STX조선도 조선회사 순위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당당히 '세계 4위'의 반열에 올랐다며 이제부터 '빅3'라는 용어 대신 자신들까지 포함하는 '빅4'로 불러달라는 요청이다.

◆"우리가 세계 2위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에 매출 11조746억원을 달성했다는 실적 자료를 최근 발표하면서 "4년 만에 '세계 2위'에 복귀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삼성중공업의 작년 매출은 10조6645억원으로 대우조선해양에 비해 4000억원가량 적다.

때마침 영국의 조선 · 해양 시황 조사기관인 클락슨이 대우조선해양의 손을 들어주는 자료도 냈다. 조선업체들이 갖고 있는 국내외 조선소의 수주잔량을 모두 합쳐 순위를 매긴 데이터를 별도로 하나 더 발표했다. 지금까지 클락슨은 각 조선소 야드별 순위만 집계해 왔다. 이로 인해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거제 옥포조선소와 루마니아 망갈리아 조선소 등이 따로따로 순위에 올랐다. 조선소 순위 산정 기준을 바꾸자 서열에 변동이 생겼다. 대우조선해양이 삼성중공업을 밀어내고 2위에 등극했다.

삼성중공업은 즉각 대우조선해양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세계 2위' 사수에 나섰다. 우선 원화매출을 기준으로 한 순위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달러를 기준으로 매출을 재면 여전히 삼성중공업이 2위라는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 해운사가 발주를 할 때도 항상 대금은 달러로 받을 정도로 조선업계의 매출은 달러 베이스로 측정하는 게 타당하다"고 맞섰다. 최근의 원화환율 상승으로 대우조선해양 매출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얘기다.

대우조선해양은 달러 대금에 100% 헤지를 거는 삼성중공업에 비해 '외환운용 전략'이 느슨한 게 사실이다. 선박 수주를 통한 '달러수취 예상금액'에서 원자재 구입 비용 등으로 나가는 '달러지불 예상금액'을 뺀 '환위험 노출금액'에만 환 헤지를 건다. 환율변동에 노출되는 달러 금액이 많다 보니 환율이 상승할 경우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도 상대적으로 커지게 된다.

삼성중공업은 주력 제품인 드릴십 FPSO(원유 생산 및 저장설비) 등의 수주잔량이 클락슨의 순위 계산에 반영되지 않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반박했다. 클락슨은 '선박'을 중심으로 수주량을 계산하기 때문에 드릴십 윗 부분에 올라가는 플랜트나 FPSO의 시추설비 등은 카운트하지 않는다.




◆확산되는 순위경쟁

조선업체간 순위 경쟁은 부동의 '세계 1위' 대접을 받아 오던 현대중공업에도 불똥이 튀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원화 매출 기준으로 현대중공업을 제치고 '조선 · 해양부문 1위'에 오르겠다는 경영목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올해 매출 목표를 '13조원 이상'으로 잡았다. 현대중공업의 전체 매출액 목표치(22조8761억원)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조선과 해양 부문만을 떼어내면 해볼 만하다는 게 대우조선해양의 주장이다. 현대중공업의 올해 조선과 해양부문 매출 목표액은 각각 11조1791억원과 1조9269억원으로 둘을 합치면 13조원을 살짝 넘는다. 박빙의 승부인 셈이다.

STX조선도 순위 경쟁에 슬쩍 숟가락을 얹었다. 클락슨이 이번에 새로 작성한 '조선회사별 순위'에서 현대미포조선을 밀어내고 4위로 올라섰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하기 시작했다. STX조선 관계자는 "회사 출범 8년 만에 세계 정상급의 조선회사로 도약했다"며 "작년 말 가동에 들어간 다롄조선소가 정상 운영되고 STX유럽(아커야즈)의 크루즈선 건조량이 늘어나면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빅3 시대'는 가고 '빅4 시대'가 도래했다는 설명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국내 조선업체들이 서로 경쟁하며 세계 조선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뿌듯한 일이지만 외형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한동안 조선업체들을 힘들게 했던 '저가 수주'도 과도한 매출 경쟁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고 우려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