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기를 맞추기 위해 요즘 1주일에 2~3일은 밤을 꼬박 새울 정도로 바쁩니다. "

충남 천안에 있는 반도체 검사장비 전문업체 제이티의 유홍준 대표는 4일 기자와 만나 "획기적인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개발한다면 불황이 오히려 시장에서 입지를 확고히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세계 반도체 업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도 제이티가 이처럼 철야 연장근무에 나서는 것은 작년 말 세계 최초로 개발,지난 1월 출시한 반도체 고온자동분류기 신제품 'JLS 3000'에 대한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서다. 고온자동분류기(Burn In Sorter)는 섭씨 120도 이상의 고온에서 반도체를 검사해 적격품만 선별하는 장비.제이티는 고온자동분류기로 국내시장에서 100%,세계시장에서 약 70%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이다.

JLS 3000은 반도체 운반로봇이 한번에 16개의 반도체를 집어 검사기로 이동시킨 뒤 불량품을 골라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회사가 자체 개발한 반도체 광학검사기인 다중검출장치와 검사 대기 중인 반도체를 빠른 속도로 검사기 쪽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초경량 고속 운반로봇이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초경량 운반로봇에는 특수모터가 사용돼 기존 로봇이 옮길 수 있는 중량의 2배까지 운반도 가능하다.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의 고온자동분류기는 1회에 8개까지만 처리할 수 있었다. 가격도 경쟁력을 갖췄다. JLS 3000은 대당 약 3억원으로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 장비보다 약 20% 싸다.

제이티는 지난해 말 제품개발과 동시에 삼성전자에 10억원어치를 납품했다. 세계에서 1~2위를 다투는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과 일본의 어드밴테스트를 제치고 따냈다. 최근에는 중국으로부터 500만달러어치를 주문받는 등 해외시장에서도 반응이 좋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제이티는 올해 JLS 3000으로만 최소 50억~100억원 이상의 추가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제이티의 연 평균 매출은 250억원 수준이다. 회사 관계자는 "검사 소요시간이 2배 가까이 단축돼 반도체 단가를 낮추는 효과도 기대된다"며 "약 10억원의 연구비를 들여 6개월간 노력한 성과"라고 말했다.

유 대표는 최근 불황에도 이른바 '잘나가는' 비결로 연구개발을 꼽았다. 그는 "중소기업이 살 수 있는 길은 꾸준한 투자를 통한 더 좋은 기술개발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사는 실제로 1990년 창업 때부터 연구개발(R&D) 인력 비중을 줄인 적이 없다. 현재 회사의 R&D 인력은 전체 직원 75명 중 약 60%인 40명에 달한다.

이 같은 R&D 집중전략으로 제이티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현재 50가지가 넘는다. 전자부품을 주로 만들던 회사는 외환위기 이후 연구개발에 집중해 국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 검사장비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로 인해 환란 이전보다 매출을 4배 가까이 늘리며 위기를 극복한 것은 물론 고온자동분류기 시장에서 세계 정상 업체로 성장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유 대표의 설명이다. 유 대표는 "더 성능이 좋은 장비 개발에 꾸준히 노력해 세계 최고의 반도체 검사장비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말했다.

천안=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