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침체에서 일단 생존이 중요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는 수출과 내수의 빠른 위축을 초래하면서 굴뚝산업에서 정보기술(IT),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실물경제 전반을 강타하고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 컴퓨터 등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온 효자 품목들이 국내외에서 고전하고 있고 서비스업도 국민이 지갑을 닫고 여가활동을 줄이면서 부진의 늪에 빠지고 있다.

그나마 제조업종에서는 조선업이 수주 잔량 덕에 아직은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으며, 서비스업에서는 금융위기 속에서도 금융.보험업이 선방하고 있고 사교육이 받쳐주는 교육서비스업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 국내외 동시 침체로 상처투성이

이번 위기의 특징은 내수와 수출이 모두 망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광공업 생산은 작년 12월 18.6% 줄어 같은 해 10월(-2.3%)에 감소세로 돌아선 이후 11월(-14.0%)에 이어 3개월째 마이너스가 이어졌다.

작년 4분기에 11.5%나 줄면서 종전 분기별 최악의 기록인 1998년 2분기(-11.3%)보다 나빴다.

출하 기준으로 보면 내수는 이미 작년 상반기부터 침체되면서 4분기(-11.1%)는 물론 연간(-0.8%)으로도 마이너스가 됐지만 수출은 작년 11월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12월엔 수출용 출하의 감소율(-15.7%)이 내수용(-15.0%)을 앞지르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내수와 수출 모두에서 활로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수출의 심각성은 작년 12월 선진국과 개도국 시장이 나란히 18%씩 감소한 가운데 대(對)중국 수출의 감소율(-35.4%)이 선진국 감소폭의 2배나 됐다는 데 있다.

◇ 차.IT 등 주력업종 무기력

업종별로 봐도 제조업의 주력 업종들이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위기감이 팽배하다.

수출 부진에 허덕이는 정보기술(IT), 자동차업종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 작년 12월 생산 감소폭을 보면 자동차(-29.3%), 반도체.부품(-42.8%), 휴대전화가 포함된 영상음향통신(-24.8%), 컴퓨터(-35.0%), 1차금속(-24.8%) 등으로 온전한 업종이 거의 없다.

IT업종은 2002년 IT버블 붕괴 당시를 넘어서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IT업종의 기초원자재 격인 메모리 반도체는 1G짜리 D램의 단가가 작년 1월 2.03달러였지만 12월에는 0.65달러까지 떨어졌다.

공급과잉 상태에서 수요가 급감, 단가 하락폭을 키웠다.

액정디바이스나 가전제품의 수출 감소도 심각한 상태다.

그나마 강력한 마켓 파워로 선방해 왔던 휴대전화도 작년 11월부터 고꾸라졌다.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소비가 극도로 위축된데다 금융위기로 자동차할부금융시장까지 얼어붙으면서 미국의 자동차 `빅3'는 물론이고 세계 주요 완성차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작년 12월 국내 자동차 판매액은 23.7% 줄었고 승용차 수출액은 29.6% 감소했다.

현대.기아차와 GM대우차가 감산을 했고 쌍용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다.

굴뚝산업의 대표이자 산업의 쌀인 철강을 생산하는 포스코가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감산한 것은 위기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준 상징적 조치였다.

◇ 서비스업도 급랭‥지갑 닫고 '방콕' 증가

서비스업종도 작년 11월 마이너스로 전환돼 2003년 카드 사태 이후 최악이다.

12월 업종별 생산지수를 보면 숙박.음식점업(-7.4%), 도.소매업(-4.5%), 오락.문화.운동 서비스업(-4.1%), 부동산.임대업(-6.8%) 등이 대부분 감소했다.

비교적 상징성이 있는 서비스업을 보면 일반음식점(-13.7%)이 두자릿수 감소율로 내려앉았고 그동안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던 휴양콘도운영업(-8.4%)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유원지.테마파크(-14.8%), 이.미용업(-4.0%)도 부진했다.

주말여행과 외식을 자제하며 여가를 주로 집에서 보내는 이른바 '방콕족'이 늘어나는가 하면 머리 손질 횟수까지 줄이면서 지갑을 닫고 있다.

◇ 조선.음료.의약품 '쌩쌩'‥교육서비스 '선방'

이런 와중에도 제조업 중에서는 조선 음료 담배 의약품이, 서비스업에서는 금융.보험업과 교육서비스업이 각각 선방하고 있다.

중소 조선사의 경우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닥쳤지만 메이저 조선업체들은 수주 잔량이 넉넉해 괜찮은 상황이다.

지난해 선박 수출은 54% 늘어난 413억 달러로 승용차를 제쳤다.

조선이 포함된 기타운송장비의 생산은 12월에 36.2% 증가했다.

음료업과 담배업의 12월 생산도 각각 6.7%, 6.4% 늘었고 의약품은 내수보다는 수출 증가세에 힘입어 11%나 증가했다.

이들 세 업종은 내수와 수출 출하가 모두 늘어난 사례로 꼽혔다.

서비스업에서는 금융.보험업의 12월 생산이 7.1% 늘어나며 증가세를 이어갔고 교육서비스업도 2.4% 증가했다.

금융.보험업은 전반적으로 성장세가 둔화되는 추세지만 이 가운데 손해보험업은 12월에 16%나 증가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의료업(3.9%)과 사회복지사업(16.3%)도 12월에 생산이 늘었다.

◇ IT.자동차 회복이 관건

실물경제에 생기가 돌려면 전후방 산업이 방대하고 고용 효과가 큰 자동차와 IT 등 주력 제조업종의 회복이 필수적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주력 제조업이 잘 돌아가면 소비심리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서비스업에도 활기를 불어넣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업종은 세계시장의 회복과 연동돼 있어 정책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조선 외에는 수출이 모두 어렵다"며 "결국 IT와 자동차 경기가 회복돼야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미국시장을 비롯한 세계시장이 금융위기를 넘어서 안정을 되찾아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세계경제의 회복 시기가 늦춰질 것으로 보이면서 얼마나 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내상을 최소화하고 체력을 비축하면서 견뎌낸다면 향후 경기 회복 때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위기관리에 나서는 동시에 내수시장을 최대한 부양해 제조업의 체력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 princ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