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중국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28일 스위스 다보스 컨그레스센터에서 열린 다보스포럼 개막식에서 각각 기조 연설자로 나서 미국을 공개 비판했다.

두 사람은 이날 작심한 듯 입을 맞춰 '미국'과 '달러'를 향해 쓴소리를 날렸다. 1992년 리펑 전 총리 이후 중국 고위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다보스를 방문한 원 총리의 발언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한 데 따른 양국 간 갈등이 국제무대에서 분출된 사건이란 해석을 낳고 있다.

원 총리와 푸틴 총리는 이날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에 처했다"며 각각 "중국 경제에도 '빅 임팩트'(큰 충격)를 날렸다","지구촌에 '퍼펙트 스톰'(초대형 폭풍)을 몰고 왔다"고 운을 뗐다.

원 총리는 "세계경제 위기의 원인이 일부 국가의 부적절한 거시경제 정책과 낮은 저축률,지나친 소비에 있다"며 "금융사들은 이익에 눈이 멀었으며,자기규제도 결여돼 있다"고 우회적으로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푸틴 총리는 특유의 퉁명스런 어조로 미국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지난해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의 다보스포럼 기조 연설을 상기시키며 "불과 1년 전에 이곳에서 미국 대표단이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 안정성과 밝은 전망을 내놓았다"며 "그러나 현재 월가의 자부심인 투자은행들은 사라졌다"고 비꼬았다.

둘은 모두 달러에 대해서도 화살을 날렸다. 원 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준비통화' 발행 국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오히려 달러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다고 역공을 폈다. 푸틴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과도하게 달러에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국제통화 시스템의 다변화를 주문했다.

원 총리와 푸틴 총리는 새로운 국제경제 질서 수립을 한목소리로 주창했다. 원 총리는 "중국이 8% 이상 성장하는 것은 어렵긴 하지만 달성 가능한 목표"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그는 "혹한의 겨울은 지나가고 동구 밖까지 봄이 왔다"며 국제적인 경제무역 협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를 하루빨리 구축하는 한편 개도국들의 발언권과 표결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국제 금융기구 조직을 대폭 개혁하자고 촉구했다.

푸틴 총리는 세계경제 위기를 대처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그룹이나 국가만이 이득을 취할 때 분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18개 그룹으로 나눠 진행된 '세계경제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 참가자 중 절반(50.8%)은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시장에 대한 과신과 규제 실패'를 꼽았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