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에 이어 최근엔 '수출 거품'이 터지면서 당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 보도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 경제를 강타한 주택 거품과 신용 붕괴는 피해 갔지만 수출 거품이 터지면서 최근 경제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일본의 제조업은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이 크게 늘면서 호황을 누렸다. 미국 소비자들이 주택가격 상승으로 지출을 크게 늘린 것도 일본의 수출 증가에 기여했다. 더구나 엔저까지 겹친 덕분에 도요타 소니 등 대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미 소비자들이 물 쓰듯 하던 소비를 중단하자 세계 2위 규모인 일본 경제는 가파르게 하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작년 4분기(10~12월) 일본 경제성장률이 -10%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수십년간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키우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실천하지 않았다. 중국 등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 때문에 노동자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 소비가 늘지 않았다. 수출은 2002년 이후 6년 동안 74% 증가했지만 국내 소비는 6.6% 늘어났을 뿐이다. 소비 둔화는 막대한 재정 적자와 정치적 이유로 정부가 과감한 정책을 취하지 못한 탓도 있다.

수출 침체의 파장은 크다. 소니는 2008회계연도에 14년 만의 첫 손실을 낼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요타는 세계 1위 자동차회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창사 이래 첫 영업 손실을 낼 전망이다. 비교적 안정적이던 실업률도 몇 달 뒤에는 상승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 심리는 더 얼어붙어 일본 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일본은행은 경제성장률이 작년 -1.8%,올해 -2%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다.

한편 일본 정부는 경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금융회사뿐 아니라 사상 처음 민간 기업에도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 경기 대책을 마련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이 대책에 따르면 출자기업의 도산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기업에 대해 정부가 손실의 50~80%가량을 지원하되 총액 한도를 1조5000억엔으로 정했다. 경제산업성은 이런 지원책을 담은 관련 법 개정안을 마련해 조만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은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