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모르면서 탁상공론만 하고 계파를 만들어 상전 노릇이나 하고…."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기 공무원관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모피아'(옛 재무부를 뜻하는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장악해온 금융위원회의 첫 수장으로 우리금융지주회사 부회장 출신의 전광우 전 위원장을 앉힌 것을 비롯해 산업자원부 장관에도 민간인을 임명해 '탈관료'지향을 분명히 했다.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한 달 내내 "공무원들 정신 차려야 한다"고 비판했다. "공무원 말에 솔깃해 넘어가지 않는다"거나 "위기가 와도 감원이 되나,봉급이 안나오나,출퇴근만 하면 된다"는 등 자존심을 건드리는 언급도 마다하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에 대해서는 "슬림하게 조직 개편을 하라니까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잉여 인력을 한방에 모아놨다"며 "이렇게 편법적으로 하니까 모피아라는 말을 듣는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그랬던 이 대통령이 1년이 안돼 180도 달라졌다. 정부 요직 곳곳에 모피아들을 중용했다. 새 금융위원장에는 정통 모피아계인 진동수 전 재정경제부 차관을 데려왔다. 경제부처 수장인 기획재정부 장관에도 재무부 금융라인의 대부격인 윤증현 전 금감위원장을 내정했다.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 옛 경제기획원 출신인 박병원 수석 대신 모피아계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을 포진시켰다.

모피아가 이처럼 끈질기고 강력한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민간인은 검증 통과 어렵다

시장에서 제법 이름이 있다고 평가되는 민간인 전문가 치고 검증에 걸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인사 담당자들의 하소연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전에도 수많은 민간 출신 후보들이 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다 사라지곤 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사람은 대부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상류층에 가깝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녀 문제나 병역,부동산투자 등에서 흠결이 없는 경우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여야 간 정쟁으로 인해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20~30년 전만 해도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큰 허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덕적 결함이 돼 버렸다.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민간 전문가를 꼭 써야 겠다는 욕심에 흠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을 내정해도 검증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의혹,고의적 병역 면제와 세금 회피 등으로 탈락하곤 했다. 그런 사례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청와대 차원의 사전 검증은 더욱 엄격해졌고 민간인이 들어올 수 있는 구멍도 좁아졌다.

검증의 벽을 통과했더라도 관료들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리더십에 한계를 보이기도 했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경우도 많았다.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재무부 인맥인 모피아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세제 쪽의 김진표,관료 생활을 일찌감치 그만뒀다가 두 번째로 기용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전부다.

대신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전성기를 맞았다. 장관은 물론이고 경제수석,총리까지도 기획원 출신들이 광범위하게 포진했다. 한덕수 권오규 재정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변양균 김병일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기획원의 대표 선수들이었다. 개혁 성향이 강했던 노무현 정부에서는 큰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기획원 출신들이 성향상 더 맞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확 달라졌다. 우선 노무현 정부에서 밀려난 재무부 출신들이 정권 교체를 위해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통령 선거가 한창이던 2007년 10월 윤진식 현 경제수석이 '경제살리기 특위'부위원장을 맡으며 최전선에 나섰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찌감치 캠프에 합류해 선거 공약 전체를 설계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기획형 관료보다는 위기관리에 능한 재무 · 금융통이 더 필요해졌다. 그 결과 재무부는 10년 만에 중흥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확실한'상명하복'

재무부는 행정고시 성적이 최상위권이 아니면 아예 들어갈 꿈도 못꿀 정도였다. 재무부 관료들의 가슴 속에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는 인식이 똬리를 틀고 있는 이유다.

스스로를 '파워엘리트'로 생각한 재무부는 사무관 한 명에게 큰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사무관의 말 한마디에 업계 판도가 왔다갔다 할 정도의 힘이 실렸다. 예전에 금융정책을 총괄했던 이재국에서 특히 그랬다. 모피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조직문화도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바친다'는 사명감을 끊임없이 주입하면서 최고의 역량을 갖출 것을 요구한다.

확실한 상명하복도 그들만의 전통이다. 상급자의 지시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행하면서 일종의 집단주의적 문화를 형성한다. 최대 라이벌인 경제기획원이 자유분방한 조직문화를 갖고 있었던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 같은 차이는 두 부처가 맡고 있는 업무 특성에서 기인한 바 크다. 금융정책은 과감하고 신속한 결정,혼란이 용납되지 않는 집행을 생명으로 하는 반면 경제기획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체로 하기 때문이다. 재무부 출신들이 실무에 밝고 철저히 현실지향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런 조직문화의 영향이 크다.

재무부는 선후배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를 끌어주며 세력을 확장하는 기질도 강하다. 모피아 내에서도 금융정책국 주무사무관,금융정책과장,금융정책국장을 차례로 역임한 '직계라인'들의 엘리트 의식과 유대감은 더 깊은 편이다.

김인식/차기현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