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제수용품을 주로 파는 서울 제기동 경동시장.20년째 과일장사를 해온 김모씨(56)는 "과일값이 대형 마트보다 20~30% 싼데도 매상은 작년의 3분의 1도 안 된다"며 "여태껏 이렇게 장사 안 되는 설은 처음"이라고 한탄했다. 그는 "작년 설 대목에 4500만원어치를 팔았는데 올해는 1000만원을 넘기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며 연방 담배연기를 뿜어댔다.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전통시장(재래시장)에서는 아예 '대목'이란 말이 사라졌다. 전통시장들은 해마다 설이면 제수용품과 값싼 설 선물을 사려는 이들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지만 올해는 손님 숫자가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때문에 점원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임대료 내기가 버거운 점포들도 수두룩하다.

의류 매장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 · 남대문시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패션쇼핑몰 apM 내 20여개 유아용 설빔 매장들은 설을 맞아 1만~2만원대 초저가 한복을 앞다퉈 내놨지만 판매는 영 신통치 못하다. A점포 점주는 "작년 설 대목엔 하루 20벌은 팔았는데 올해는 7~8벌 팔기도 힘들다"며 "내국인이 줄어든 대신 엔고로 일본인들이 늘어 설 대목이 아니라 '엔 대목'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주변 환전소 관계자는 "일본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1인당 환전액이 1만~2만엔에 불과할 만큼 큰 돈을 안 쓴다"며 "돈 잘 쓰는 일본사람들은 백화점 · 면세점에 가지 시장으로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작년 설에는 선물용 떡 주문이 밀려 점포마다 떡 찌는 김으로 가득했던 종로 낙원동 떡집 골목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김용환 원조종로떡집 사장은 "매년 명절 선물용 떡을 사가던 50여곳의 단골 거래처의 주문전화가 아직 없어 걱정"이라며 "작년엔 5만원대 떡 세트가 잘 나갔는데 이번 설에는 안 팔릴 것 같아 1만~3만원짜리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호/조귀동/김평정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