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BOA 추가지원 협의..씨티그룹.도이체방크 등 부실 우려 확산
소비위축으로 심각한 경기침체 예고..기업 몰락도 잇따라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감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등의 경기침체에 따른 실직사태 등으로 소비가 크게 위축되는 것이 속속 확인되고 판매부진과 자금난으로 몰락하는 기업들도 속출하는 가운데 정부의 구제금융 속에 최근 잠잠해졌던 금융기관의 부실 문제에 대한 걱정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미 뉴욕증시와 유럽 주요 증시가 이날 급락한 것도 이런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다.

◇ 다시 고개 든 금융불안 = 작년말 위기를 겪었던 씨티그룹이 다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메릴린치를 인수한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가 정부로부터 추가 자금지원을 받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금융기관의 자금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메릴린치를 인수한 BOA에 미 정부가 추가로 자금지원을 하는 것이 임박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넷판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미 250억달러의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BOA를 추가로 지원하는 논의는 BOA가 메릴린치의 4.4분기 손실이 예상보다 커 인수절차를 마무짓지 못할 수 있다고 미 재무부에 알리면서 작년 12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재무부는 BOA의 메릴린치 인수가 실패할 경우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BOA가 메릴린치 인수를 마칠 수 있도록 자금지원에 나서기로 했고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BOA와의 협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BOA는 정부가 지원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메릴린치 인수절차를 지난 1일 마쳤다.

BOA는 정부의 추가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오는 20일 4.4분기 실적발표때 밝힐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BOA가 4분기에 손실을 냈거나 간신히 이익을 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문은 미국내 자산규모 1위의 은행인 BOA의 이런 상황은 정부가 대규모 자금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하고 자본이 더 필요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월가의 대표주자였던 씨티그룹은 주가가 폭락하는 등 투자자들의 불신으로 다시 고전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위기에 몰려 정부의 지원을 받았던 씨티그룹은 자금 조달의 압박 속에 전날 주식영업 부문인 스미스바니를 떼어내 모건스탠리와 합작사를 설립키로 합의하는 등 자본 조달과 덩치 줄이기에 나섰지만 앞날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스미스바니를 사실상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게는 됐지만 실적악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따라 씨티그룹이 사업 매각 등을 통해 규모를 3분의 1가량 줄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초 22일로 예정됐던 4.4분기 실적발표를 16일로 앞당긴 씨티그룹은 이번에도 대규모 손실을 내 5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씨티그룹 주가는 이런 우려 속에 이날 뉴욕증시에서 23%나 폭락하면서 5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공적자금을 받는 것은 `수치'라고 밝혀 독일 정부와 마찰을 일으켰던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도 대규모 적자와 사실상 정부의 지분 참여로 체면을 구기게 됐다.

도이체방크는 이날 지난해 4분기에 48억유로(한화 약 8조6천억원)의 적자가 발생, 3분기까지 흑자를 모두 까먹고 지난해 전체로 39억유로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독일 언론들은 지난해 9월 독일 최대 소매은행은 포스트방크를 인수하기로 한 도이체 방크가 최근 실적악화와 포스트방크의 가치하락에 따라 재협상을 벌인 끝에 지분 참여를 사실상 허용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유럽 최대 은행인 HSBC 홀딩스와 미국의 웰스파고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모건스탠리는 HSBC가 200억~30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고 배당금도 절반으로 줄여야 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애틀랜틱에쿼티즈의 애널리스트인 리처드 스테이드는 웰스파고도 100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해야 할 수 있고 배당금도 축소해야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업의 급증에 따른 가계 사정 악화는 고객들의 연체나 신용카드 사용 축소 등으로 이어져 금융기관들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소비위축 따른 심각한 침체 예고 = 미국의 소비위축이 지속되면서 소비 감소에 따른 기업실적 악화와 이에 따른 감원으로 소비가 더 위축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미국의 지난해 12월 소매판매액이 전월에 비해 2.7% 감소하면서 6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고 미 상무부가 이날 발표했다.

이는 당초 시장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예상됐던 것보다 훨씬 저조한 것으로 소매판매가 6개월 연속 감소한 것은 역대 최장 기록이다.

특히 12월 소매판매액은 1년전과 비교하면 9.8%나 줄었다.

또 11월 소매판매 실적이 당초 발표됐던 -1.8%에서 -2.1%로 하향 조정되는 등 미국의 최대 쇼핑시즌인 연말 판매가 극도로 부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와코비아의 이코노미스트인 애니카 칸은 연말 쇼핑시즌 판매가 역대 최대인 3.5%가량 줄었다고 마켓워치에 말했다.

이 같은 연말 판매 부진으로 작년 소매판매는 0.1% 줄어 관련 집계가 시작된 1967년 이후 처음 감소했다.

하이프리퀀시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이언 셰퍼드슨은 연말 쇼핑시즌이 '재앙' 수준이었다면서 이런 소비부진은 당초 예상보다 더 심각한 경기침체를 예고한다고 분석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지난해 11월말부터 이달 5일까지 전국의 기업여건을 조사해 이날 발표한 `베이지북'에서 고용시장의 위축과 주택시장의 침체, 제조업 경기의 둔화 등으로 대부분의 지역에서 전반적인 경제활동이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 잇따르는 기업 몰락 = 어려운 경제상황은 기업들을 몰락의 길로 이끌고 있다.

북미 최대의 통신장비 업체인 노텔 네트웍스는 판매부진과 신용경색에 따른 자금난 등으로 이날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캐나다 토론토 소재의 노텔은 이날 미 델라웨어주 윌밍턴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으며 몇몇 자회사들도 파산보호 신청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노텔의 파산보호신청은 15일까지 1억700만달러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상황을 앞두고 이뤄졌다.

캘리포니아 소재 백화점 체인인 고츠초크스도 이날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고츠초크스는 이날 GE캐피털을 비롯한 채권단과 1억2천500만달러 규모의 채무 출자전환 협상을 진행중이라면서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회사 매각을 비롯한 여러가지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코츠초크스의 파산보호 신청은 작년 11월 파산보호 신청을 한 전자제품 유통업체 서킷시티와 함께 소비위축으로 유통업체들이 얼마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상장회사 중 파산보호 또는 파산 신청을 한 기업은 136개에 달해 전년보다 74%나 증가했다.

(베를린 뉴욕연합뉴스) 김경석 김현준 특파원 jun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