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하반기 이후 세계 선박 발주 시장은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금융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선주들의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진 탓이다. 해운업의 부진도 선박 발주를 줄이는 요인이다. 현대중공업도 선박발주 감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계 1위 조선사'이긴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사장이 신년사를 통해 "호황기에 익숙해졌던 고비용 구조나 업무관행을 과감하게 타파하자"며 "원가 요소의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적극적인 절감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사장은 이어 "앞으로 강자만 살아남는 냉엄한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의 상황에서 외부차입 없이 경영활동을 할 수 있는 체질을 갖춰야 위기 속에서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되도록 올 한 해는 신중한 자세로 회사경영을 이끌어가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모든 투자는 그 효과가 단기간에 매출과 이익으로 실현돼 현금화할 수 있는 경우에만 집행토록 하고 그 이외의 투자는 경영환경이 호전된 이후에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의 이런 경영계획에는 다른 업종에 비해서는 경영 상황이 양호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추가 수주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동안 받아놓은 주문이 많아 한동안은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당분간 현금흐름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2~3년 전에 고가로 받아놓은 선박 건조 주문이 올해 하나 둘 매출로 잡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119척의 배를 완공해 선주에게 인도할 계획이다. 현대중공업의 누적 인도건수는 1979년 100척을 돌파한데 이어 1983년 200척,1992년 500척,2003년 1000척을 차례차례 뛰어넘었고 작년에는 1500척을 넘어섰다.

매출과 함께 순이익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 한 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후판(厚板) 값은 올 들어 내림세를 탈 확률이 높다. 후판 생산설비는 늘어난 반면 한국 중국 등의 신생 조선소가 대거 일손을 놓으면서 후판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내실을 다지는 노력도 병행키로 했다. 탄탄한 유동성을 기반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투자를 꾸준히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완공한 T자형 도크가 대표적인 사례다. 도크를 T자 모양으로 판 것은 세계에서 현대중공업이 처음이다. 도크는 완성된 선박을 바다에 띄울 수 있도록 파놓은 일종의 대규모 웅덩이다. 일반적으로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일자형으로 만들어진다.

이번에 새로 선보인 'T자형' 도크는 울산 조선소의 제1도크를 개량한 것이다. 천경우 현대중공업 조선사업본부 상무는 "기존 통념을 깨고 제1도크의 측면 중앙 부분을 25% 더 확장해 세계 최초로 T자 모양의 도크를 준공했다"며 "이로 인해 생산성이 두 배가량 더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확장된 부분은 길이 165m,폭 47m,높이 12.7m다. 현대중공업은 이번 T자형 도크에서 다른 선박의 일부를 동시에 건조하는 탠덤(Tandem)공법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확장된 부분에서는 선박 블록 제작이 이뤄진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