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빨리 오르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것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크고 정부가 전통적으로 물가에 많이 간섭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1일 기획재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따르면 OECD 회원국들은 지난해 7월까지 원자재 값 폭등에 고물가로 몸살을 앓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유가가 폭락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고점 대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반면 한국은 물가가 급격히 오를 때와는 딴 판으로 하락 속도가 매우 느리다.

이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은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이 원자재를 대부분 수입하는 상황이어서 원.달러 환율의 움직임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다 정부가 물가 상승 요인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물가를 억눌렀던 게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물가 하락 속도가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환율 요인이 가장 크다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달러로 구입하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올라 물가에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 오를 땐 '껑충' 내릴 땐 '미적'
우리나라의 물가는 쉽게 말해 오를 때 다른 국가보다 빨리, 많이 오르고 내릴 때는 찔끔찔끔 내려가는 구조다.

OECD 30개 회원국의 지난해 11월 평균 물가상승률은 2.3%로 고점인 7월의 4.9%와 비교하면 2.6%포인트나 낮아졌다.

물가상승률이 절반 이하 수준으로 꺾인 것이다.

선진국에선 최근 들어 물가 하락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등이 포함된 G7 국가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7월 4.6%에서 11월 1.5%로 3분의 1 토막이 났다.

G7 국가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4월 3.1%를 시작으로 5월 3.5%, 6월 4.1%로 오르다가 7월 4.6%를 고점으로 8월 4.4%, 9월 4.1%, 10월 3.2%, 11월 1.5% 순으로 하향곡선을 그렸다.

미국의 경우 작년 7월 5.6%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이 11월에는 1.1%로 5분의 1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특히 지난해 10월에서 11월 사이에는 물가상승률이 3.7%에서 1.1%로 급락했다.

일본은 물가상승률이 작년 7월 2.3%에서 11월 1.0%로, 중국은 같은 기간 6.3%에서 2.4%로 떨어졌다.

즉 국제 유가 및 곡물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자 해당 국내 물가 상승률에 곧바로 반영된 것이다.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5.9%에서 4.5%로 1.4% 포인트, 전체 상승률의 5분의 1 정도가 낮아지는데 그쳤다.

문제는 지난해 상반기 물가 급등기 때 한국은 여타 국가보다 더 올랐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 측면에서 저점이었던 지난해 4월부터 고점이던 7월까지 OECD 30개국은 3.5%에서 4.9%로 1.4%포인트 오르는 동안 한국은 4.1%에서 5.9%로 1.8%포인트나 올랐다.

같은 기간 G7 선진국들은 물가상승률이 1.4%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 전문가들 "물가 통제 개선해야"
경제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격히 내려가는 가운데 한국만 조금씩 떨어지는 것은 환율 급변과 더불어 정부의 지나친 가격 통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의 물가가 덜 떨어진 것은 환율 요인이 컸다.

환율이 달러당 1천원에서 1천300원으로만 가도 물가 상승률이 크게 부담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동안 수입 가격이 워낙 올라 쉽게 내리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는 정부가 경기 부양에만 집중하고 있어 물가 쪽에는 별로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다.

다만 정부가 컨트롤 할 수 있는 부분은 공공서비스 정도인데 이 분야에서 만이라도 제대로 신경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태정 우리금융 경영연구실 수석연구위원은 "한국의 물가 감소 폭이 작은 것은 가격 통제의 폐혜"라면서 "MB물가로 불리는 품목을 관리한다는 이유로 물가상승을 억제하다보니 제때 물가를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물가는 어차피 시차를 두고 반영되기 마련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기업들이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최근에는 생산자 물가보다 소비자 물가 반영 폭이 커지면서 물가 감소 폭이 둔화됐다"고 말했다.

송 위원은 "정부로선 가격이 시장에서 조정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러지 못하다는데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물가를 시장 자율에 맡기되 문제가 생기면 적극 개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의 기조는 수요 공급에 의해 물가를 조정하는 것이며 또한 전반적인 유통 구조를 개선하고 공공요금을 관리해 시장의 물가를 선도할 것"이라면서 "기업들이 원자재 값 변동분을 시차에 따라 반영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심재훈 박용주 기자 speed@yna.co.krpresident2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