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불황에 따른 기업 부실을 털기 위한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중소기업에 이어 대기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들도 체감경기와 자금 사정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일부는 경영실적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대기업의 재무상황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부실 위험이 커지면 구조조정에 나설 계획이다.

◇ 대기업도 불안불안
11일 한국은행과 증권업계에 따르면 경기 부진이 심해지면서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영업실적과 경영 여건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인 에프엔가이드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128개 주요 기업에 대한 증권사들의 실적 추정치들을 집계한 결과, 작년 4분기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전 분기보다 각각 27.6%, 50.5%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올해 영업이익은 61조869억 원으로 작년보다 5.4%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작년 10월 말 당시에 추정했던 규모보다 17.4%나 줄어든 것이다.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작년 9월 말 현재 108.5%로 1년 전보다 18.8%포인트 높아졌다.

9개 그룹의 부채비율은 200%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의 조사 결과, 대기업(제조업종)의 작년 12월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42로 전달보다 13포인트 급락해 1998년 외환위기 때 수준을 기록했다.

올해 제조업의 업황전망 BSI는 52로 작년보다 16포인트 떨어졌고 중소기업(55)보다는 대기업(47)이 더 어두웠다.

대기업의 자금사정 BSI는 작년 11월 73에서 12월 64로 하락했다.

◇ 금융권, 6~7개 그룹 주시
은행들은 대부분 대기업이 유동성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경기침체가 심화하면 경영 실적이 더욱 악화하면서 차입금과 이자비용이 늘어나는 등 자금난에 처하는 곳이 늘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하이닉스에 대해서는 채권단이 작년 말에 8천억 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으며 법정관리를 신청한 쌍용차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재 대기업도 신용등급이 A- 이하이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작년까지 다른 기업의 인수.합병(M&A)에 뛰어든 그룹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는 `승자의 재앙'을 맞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권은 6~7개 그룹을 주시하고 있으며 이중 일부는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이미 프리워크아웃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부실 징후가 뚜렷해져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채무 재조정을 하고 부분적인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137개 업체를 대상으로 프리워크아웃을 하고 있다"며 "중소기업이 많지만 중견기업도 상당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대기업 심사담당자는 "당장 대기업들에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작년 말 회계자료가 나오는 대로 거래 대기업에 대한 정밀 심사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윤영환 신용분석팀장은 "대기업도 파생상품인 키코와 관련한 부실 등 우발 채무가 있지만 시장에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며 "경기 악화로 자금시장이 위축되면 대기업도 생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주채권은행을 통해 대기업을 모니터링하면서 부실 징후가 나타나면 개별 기업 또는 그룹별로 구조조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대기업들의 재무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