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철강업체들에 대한 전망은 한결같다. '고생 문이 훤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자동차 전자 건설 등 주요 수요 업체들이 일제히 불황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철강업체에는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아르셀로미탈 US스틸 신일본제철 등 세계 유수 철강업체들이 줄줄이 감산 대열에 합류했다. 일부 업체들은 '용광로 폐쇄'라는 최후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이로 인해 광산업체와 철강업체에 대한 인수.합병(M&A) 시도가 잇따를 전망이다. 그동안 쌓아 놓은 현금과 기술력을 무기로 철강업계의 판도를 단숨에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60년래 최악 위기

미국 철강 리서치 회사인 '월드 스틸 다이내믹'은 최근 올해 글로벌 철강 생산량이 작년 대비 13.9%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27.3% 줄어든 이래 60여년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이다. 문제는 철강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철강 생산량이 2007년 수준을 회복하려면 적어도 4년의 시간의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우려는 주식시장에 작년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작년 하반기 대다수 글로벌 철강업체들의 주가는 60% 이상 폭락했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 아르셀로미탈의 주가는 지난해 7월 이후 70%가량 폭락했고 러시아 최대 철강업체 세버스탈의 주가는 같은 기간 90% 가까이 가라앉았다.

철강업체의 수익성은 올 1분기 중 최악의 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원자재 재고와의 '미스매치'가 극에 달하기 때문이다. 창고에는 비싼 값에 공급받은 수입 원자재가 무더기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철강제품 가격은 급락세로 반전해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악성 재고를 빨리 소진하고 싶지만 철강 수요가 크게 둔화돼 탈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 멈춰서는 용광로

철강업체들은 떨어지는 철강제품 가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감산'이라는 비상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지역 철강회사의 공장 가동률은 50%대로 떨어졌다. 198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올 하반기에 계획 대비 100만t 을 감산하기로 결정했던 신일본제철은 최근 200만t 가량 더 줄이기로 방침을 세웠다. 신일본제철 포스코 등과 함께 세계 2위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JFE도 감산량을 당초 50만t에서 150만t으로 확대했다.

급기야 용광로 가동을 중단하는 '휴풍(休風)'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 용광로에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던 작업을 중단한 것이다. US스틸 아르셀로미탈 등에 이어 최근엔 JFE 고베철강 등 일본 업체도 휴풍 대열에 합류했다.

대규모 감산에 들어간 해외 철강회사들은 설비투자 계획마저 줄줄이 연기하거나 취소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 재원 마련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로이터 등 주요 외신과 철강업계에 따르면 아르셀로미탈은 올초부터 진행할 예정이던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을 연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아르셀로미탈은 향후 8년간 350억달러(약 40조원)를 투자해 조강생산 능력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었다.

2000년대 들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왔던 중국 철강업체들도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안산강철은 200만t 규모의 후판(厚板)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무기한 연기했고 바오산강철은 1000만t짜리 제철소 설립안을 재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를 기회로

대형 철강업체를 중심으로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발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현금 동원력이 크고 원가 경쟁력이 강한 포스코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포스코는 올해 국내 투자 규모를 사상 최대인 6조원으로 늘려 잡았다. 지난해 실제 투자 집행액(3조4000억원)에 비해 80%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내실을 다지겠다는 전략이다.

투자 대상은 이미 짜여져 있다. 우선 광양제철소에 1조8000억원을 들여 연간 생산량 200만t 규모의 후판공장을 하나 더 세운다. 2010년 7월 이 공장이 완공되면 포스코의 후판 생산량은 연간 700만t 이상으로 불어나 세계 1위 후판 생산 업체로 올라선다. 고질적인 국내 조선업체들의 후판 부족 현상도 크게 완화될 전망이다. 국내 조선업체들은 필요한 후판을 국내에서 구하지 못해 한 해 600만t가량을 수입해 쓰고 있다.

포스코는 값이 싸진 광산업체와 철강업체들의 동향도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 기회가 닿으면 '공격 명령'을 내릴 태세다. 이를 위해 국내 투자 6조원과 별도로 1조원가량을 준비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M&A 실무팀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는 철강 및 광산업체들에 대한 M&A 기회가 많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금 보유량이 많은 철강업체들을 주목해야 한다"며 "포스코의 경우 올해가 풍부한 현금으로 사업 규모를 확대하고 원료 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라고 말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