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증유(未曾有)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

반도체 업체들은 최근의 업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공급 과잉으로 D램 값이 지난 한 해 동안 56% 가까이 떨어진 데다 설상가상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부진까지 겹쳐 사상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체들의 성적도 엉망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를 넘기면서 그간 꿋꿋했던 삼성전자마저도 적자로 돌아섰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반도체 업체들의 생존 경쟁이 본격화했다는 표현으로는 현재의 업황을 설명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우울한 업황 전망

반도체 업황 전망은 올해도 밝지 않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올해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를 지난해보다 5.6% 줄어든 2467억달러로 내다봤다. 시장조사 기관인 가트너는 더 부정적인 견해를 내놨다. 올해 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16% 감소한 2192억달러에 그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조사 기관마다 올해 전망이 엇갈리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과연 바닥이 언제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더하다. 세계 경기 침체와 반도체 업황이 맞물려 있는 데다 최근 진행 중인 대만-일본 D램 업체 간 합종연횡이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서플라이는 지난해 4분기를 바닥으로 봤다.

올해 D램 값이 30%가량 하락한다면 연말께는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이고 있다. 가트너는 올해 중 바닥을 확인할 것으로 보고 회복 시기를 2011년께로 예상했다.



◆자신만의 강점으로 불황 넘는다

불황의 긴 터널을 뚫는 업체들의 전략은 무엇일까.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삼성전자는 풍부한 현금과 그간 갈고 닦은 기술력을 무기로 삼고 있다. 삼성이 올해 전략 제품으로 내놓은 것은 SSD(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다. 일명 '하드'로 불리는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를 대체하는 제품으로 낸드플래시를 이용해 만든다. 이 제품은 읽기와 쓰기 속도가 하드보다 빠른 데다 전력 소모량도 적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업계에서는 최초로 256기가바이트(GB) SSD를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 제품을 사용하면 10기가급 고화질 영화 한 편을 50초 만에 저장할 수 있다. 이 시장은 지난해 3억2500만달러에서 성장을 지속해 2012년께 95억48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올해부터 일반 노트북과 데스크톱 컴퓨터에 SSD가 많이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서버용 SSD 시장 공략에도 나설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11년께면 전체 낸드플래시의 30% 이상이 SSD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D램 업계 2위인 하이닉스반도체는 비상경영 체제로 올 한 해 어려움을 풀어나가기로 했다. 지난해 말에는 급여를 30% 줄이고 전체 임직원들이 2주간의 무급휴가를 가는 자구안을 마련했다. 은행들로 이뤄진 주주협의회가 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의 승부수는 탁월한 원가 절감 기술에 있다. 하이닉스는 지난해 말에도 20%가량 원가를 줄일 수 있는 반도체 패키지 방식을 찾아냈다. 실리콘으로 만든 웨이퍼를 잘라 칩으로 만들지 않고 웨이퍼 단계에서 바로 필요한 공정을 마친 뒤 완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이닉스는 이 기술을 사용해 세계 최초로 가로 길이가 표준규격의 절반 정도에 불과한 4기가 서버용 D램을 만들었다.

하이닉스는 휴대폰과 내비게이션 등 휴대용 디지털 기기에 쓰이는 D램도 개발해냈다. 54나노 초미세 공정을 사용한 2기가비트(Gb) 모바일 D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시장은 성장세도 양호하다. 2012년까지 연평균 약 14.4%가량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하이닉스는 모바일 D램을 올해 상반기 중에 양산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삼을 계획이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