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해고 한파가 휘몰아칠 조짐이다. 영세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과 공기업에 다니는 직원들도 이 한파의 한가운데 서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해고를 통한 감량경영은 최대한 자제하라"고 주문한다. 감원으로 인한 부작용 때문이다. 과도한 군살빼기가 단행될 경우 직원들의 충성도가 약해지고 노사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회적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대신 근로시간 단축,임금삭감,전환배치 등 창조적 유연성(기능적 유연성)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산업현장에 고용위기가 현실화되면서 감원보다 잔업과 특근을 줄이고 임금을 삭감하는 등 갖가지 고용유지 전략도 등장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조정

가장 초보적 구조조정 수단이 감산과 이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이다. 현대자동차는 1일부터 감산체제에 들어갔다. 하루 2시간 가까이 실시했던 잔업과 주말특근이 중단돼 근로자들의 임금도 깎이게 됐다. 자동차판매 급감으로 인한 자구책이다. 완성차에서 시작된 감산은 철강,자동차 부품,타이어 등 관련 업종들로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지속될 경우 기업들은 더 높은 강도의 자구책을 동원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구조조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2단계 처방이 임금유연성이다. 상여금 반납,임금피크제,임금삭감 등을 통한 군살빼기이다. 기업이 감원을 자제하는 대신 근로자는 임금을 양보하는 식이다. 그래야 회사가 망하지 않고 고용도 유지할 수 있다. 김정한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경영난 타개 수단으로 먼저 근로시간과 임금을 조정한 뒤 그래도 버티기 어려우면 순환무급휴직,희망퇴직,일시적 해고 등의 군살빼기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전환배치와 작업유연성

기아차 노사는 대형 레저용 차량인 카니발을 만드는 경기 광명시 소하리 1공장에서 소형차 프라이드를 병행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일감이 줄어든 카니발 라인에서 수출물량이 늘고 있는 프라이드를 내년부터 추가 생산키로 한 것.대형차와 소형차 공장 간에 근로자들의 전환배치가 이뤄진 셈이다. 노사는 화성공장에서 생산 중인 오피러스를 카니발 라인으로 옮겨 생산하기로 합의했다.

전환배치 방식은 생산라인의 근로자 교환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직무를 다른 직무로 발령내는 방식이다. 예컨대 관리직을 아예 영업직이나 생산직 등 타 직군으로 내보내는 경우이다.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업무 변경에 따른 해당 근로자들의 반발이 발생하기 일쑤다.

◆진화된 '잡 셰어링'고려해볼만

외환위기 때 일부 기업에서 감원 없이 일자리를 유지해 유명해진 제도다. '잡 셰어링(일자리나누기)'은 고용인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기업에 부담요인이지만 오히려 업종에 따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한킴벌리가 교대제근무를 바꿔 일자리나누기를 성공한 대표적 사례이다. 이 회사는 외환위기 당시 제품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공장가동률이 절반 이하가 되고 재고가 계속 쌓여가자 정리해고 대신 기존의 3조3교대 방식을 4조3교대제로 바꿨다. 국내 3개 공장에서 4조 근무제를 전면 실시,생산라인을 1년 내내 풀가동했다. 이런 감원 없는 구조조정의 결과 이전보다 직원 수는 늘면서도 생산성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장원 뉴패러다임센터 소장은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작업방식을 개선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기업이 많다"며 "하지만 교대제 변경으로 부담이 될 수 있는 기업은 굳이 일자리나누기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수단,일시적 해고

근로시간 단축이나 임금삭감,전환배치 등으로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기업에는 '일시해고'(lay-off)라는 완충장치가 또 다른 대안이다. 일시해고는 경영이 어려워 일시적으로 감원을 한 뒤 기업 형편이 나아지면 해고자를 우선적으로 복직시켜주는 제도다. 직장에서 영원히 내쫓는 해고(fire)가 '사회적 사망선고'라면 레이오프는 미래에 직장으로 리콜될 수 있는 '사망 유예선고'인 셈이다. 미국 기업들 사이에선 일반화된 제도다.

우리나라에선 GM대우 부평공장이 2005년 9월 해고근로자를 복직시키는 레이오프제를 실시해 고용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미친 적이 있다. 당시 대우차 부평공장은 노사합의로 1600여명의 직원을 복직시켰다. 2001년 대우자동차 부도로 부평공장 1750명의 근로자가 정리해고를 당한 뒤 4년 만의 감격이다.

직원들이 일정 기간 월급을 받지 않고 돌아가며 휴직하는 무급순환휴직제도도 경영위기를 극복하는 해법으로 꼽힌다. 인원감축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피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정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해고는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한다"며 "인적자원은 기업의 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비용개념으로 간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김동욱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