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학파의 태두인 폴 새뮤얼슨 미국 MIT 명예교수(93)는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1930년대 대공황기와 마찬가지로 과감한 재정지출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970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며 시카고대 학생 당시 대공황기를 겪은 새뮤얼슨 교수가 일본 아사히신문(27일자)과 가진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현 경제위기를 평가한다면.

"1929년부터 1939년까지 계속된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임이 틀림없다. 이번 위기는 피할 수 있었으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실정으로 인해 막지 못했다. 그는 자본시장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물렁하게 만들어 자본시장을 건전하게 견제할 수 있는 기능을 없앴다. 결과적으로 중산층을 파괴한 부시 대통령은 미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금융시장 붕괴 원인을 구체적으로 짚어달라.

"금융위기는 버블(거품)이 생겼다가 꺼지면서 발생했다. 자본주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주택버블은 과거에도 있었으나 이번엔 버블이 생기는 과정에 '금융공학'이란 괴물이 개입,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부시 정권의 느슨한 규제를 틈타 리스크에 대한 인식 없이 레버리지(차입) 기법이 횡행해 버블이 부풀어졌다. 1995년부터 증시버블 조짐이 있었으나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도 잘못이다. '나쁜 규제완화'와 '무능한 인물의 등용'이 금융위기를 가져왔다."

―금융위기 타개책은.

"통화 발행을 대폭 늘려 과감한 재정지출을 하는 길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세계대전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 대공황 당시 세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일 정도로 어려웠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한 과감한 재정지출 정책이 실업 해결 등 경제난을 푸는 계기가 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적자 재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공 사업과 농업지원에 과감하게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기를 살렸다."

―루스벨트 정책의 시사점은.

"과감한 재정지출을 단행해도 경기회복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루스벨트의 고용정책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7년이 걸렸다. 케인스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부를 정도로 정부의 시장개입을 꺼렸던 전임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정책 집행에 실기한 것도 경제가 악화된 원인이 됐다. 1929년 주가 대폭락 후 1930년부터 1932년 사이에 공황대책이 즉각 실시됐다면 대공황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미 대선에 경제위기의 영향이 있겠는가.

"물론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시작된 금융대란으로 퇴직 후 노후생활의 기반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화당이 우위를 보였던 남부지역에서 민주당이 많은 표를 얻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1981년 출범한 레이건 행정부 이후 지속돼온 미국 정치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게 틀림없다."

―미국의 앞날은.

"금융위기가 해결된다 해도 미국의 장래가 밝다고 보지 않는다. 거액의 경상수지 적자가 갈수록 커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특히 우려스러운 일은 글로벌 자금이 '달러화'로부터 대거 탈출해 세계 금융시장이 무질서해지는 것이다. 미 자본시장에서 외국 자본의 탈출 러시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최인한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