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맞춘 '좋은' 제품이 시간넘긴 '최고' 보다 가치있는 이유는…

BMW의 브랜드와 디자인은 특별하다. 도요타의 15%에 불과한 차를 팔면서도 그 명성은 절대 뒤지지 않는다. 브랜드 전문가 왈리 올린스는 "BMW 특유의 개성과 정체성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다"고 평했다.

전 세계 모든 메이커들이 BMW의 디자인 능력을 벤치마킹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성공한 디자인이 갖고 있는 독창성과 영향력까지 베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미국 청년들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애플의 아이폰 역시 마찬가지.경쟁사들이 유사한 제품들을 쏟아내도 아이폰은 아이폰이다.

대중들은 독창적인 제품에 열광한다. 그리고 지속적인 변화를 요구한다. 요즘 경영화두로 각광받고 있는 감성마케팅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유행 변천의 역사는 인류 복식문화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이 때문에 자동차업체와 TV 메이커들은 끊임없이 스타일을 바꾼다. 화장품과 초콜릿 포장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기업들의 사무실 인테리어도 바뀌고 변호사 같은 전문인력들이 사용하는 편지 봉투,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 보고서 제작 역시 디자이너의 몫으로 옮겨오고 있다.


▶▶ 창의성의 최대 걸림돌은 시간

창의성은 우리 일상생활의 사방에 녹아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아이디어가 들어가 있지 않는 제품은 없다.

창의성이 범람하는 이유는 대중들이 새로운 생각과 디자인을 계속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에 성공했다고 미래에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대중(소비자)들의 취향은 미리 예측하기 어렵다. 대중은 시장에서 창의적인 제품들을 선별적으로 고른다. 비록 창의적일지라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런 가책 없이 배격해버린다.

문제는 창의적인 능력을 분출하고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다. 통상 디자이너를 고용할 때 드는 비용이라면 인건비와 부수적인 활동경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비용은 시간이다. 아무리 뛰어난 창의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유행의 흐름을 놓쳐버린 제품이나 서비스는 그 가치를 잃게 돼 있다. 신차 개발 기간에 맞춰 새로운 스타일을 내놓지 못한 디자이너는 그저 회사 비용 증가에 기여할 뿐이다.

게다가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은 대개 마감시한이 닥쳐서야 일하는 습관이 있다. 우리는 일부 방송 작가나 소설가들이 밤을 새우고 나서야 겨우 원고를 마감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창의적인 사람은 시간을 통제할 줄 안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단 1%의 개선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몇 달에 걸쳐 바꾸고 또 바꾼다. 결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들은 더 나은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좋은 아이디어도 폐기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간 아이디어를 휴지통에서 다시 꺼내 쓰는 경우는 의외로 많다. 일반 생산라인이나 지원조직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이 언제나 최고의 제품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변수를 대입하지 않는 경영은 죽은 경영이다. 만약 시간을 맞춘 '좋은' 제품과 시간을 넘겨버린 '최고'의 제품이 있을 경우 많은 기업은 '좋은' 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창의적인 직원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시간을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 싸움이 벌어진다. 창의적인 사람은 더 많은 시간을 원하고 관리자는 줄이려고 한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라는 격언은 창의성을 먹고사는 기업 조직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만약 시간을 적절하게 통제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그 기업은 대중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수익을 끌어낼 수 있다.


▶▶ '시간은 돈' 고려못한 영화 '천국의 문'

하지만 현실은 종종 그렇지 않다. 시나리오작가 출신인 마이클 치미노 감독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었다. '대도적' '더티 해리2' '디어 헌터' 등이 그의 걸작들이었다.

그는 1978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로부터 백지수표를 받고 '천국의 문'이라는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독은 제작의 모든 단계에서 정해진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길어야 석 달 정도로 계획한 제작기간은 무수하게 반복된 재촬영으로 2년이나 걸렸다. 여기에다 완성된 영화의 '오리지널 타임'은 5시간이 넘었다. 그 영화를 2시간30분짜리로 편집해 극장에 내다 걸었지만 그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스토리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고 2년이란 시간을 끌면서 제작한 영화를 절반으로 줄이다보니 화면 연결도 엉성했다.

영화는 개봉한 지 불과 나흘 만에 간판을 내렸고 무려 4000만달러의 손실을 입은 영화사는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손실은 기네스북에 올랐다.


▶▶ 시간속엔 상호협력의 비밀이 숨어 있다


기업들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자신의 비용을 통제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 동시에 최대한 많은 양의 제작 정보를 제공해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들이 나중에 "그건 몰랐다"고 말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은 또 비전과 목표를 공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스로 창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상업적 규칙에 맞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대개 상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게다.

"이번 프로젝트는 소신을 갖고 한번 해봐.무엇이든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하지만 이 얘기를 액면 그대로 믿었다가는 나중에 큰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상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실상은 대부분 이렇다.

"당신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야.그래서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들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들지 잘 알거야.이번 건은 특히 중요하기 때문에 예산과 시간을 다소 초과해도 괜찮아.당신이 좋은 결과만 낼 수 있다면 말이야.물론 합리적인 선을 넘지 않아야 할거야.우리는 전에도 함께 일한 적이 있으니까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거야."

결국 시간의 비밀도 이처럼 상호 협력과 이해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만약 상사의 뜻을 제대로 읽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다면 그 조직은 그 다음 단계,'네트워크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특별 취재팀>

조일훈 산업부 차장
이정호 산업부 기자
이해성 사회부 기자
박신영 문화부 기자

<도움말 주신 분>

이홍교수 광운대 경영대학장
키스 소여 교수 워싱턴대 심리학과 <그룹 지니어스>저자
신원동 원장한국인재전략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