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로 금융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은 1990년대초 일본의 거품 붕괴 현상과 흡사하다.

일본은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무너지면서 금융회사들이 연쇄 도산,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에 접어들었다.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등 굴지의 투자은행(IB)들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AIG가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은 데 이어 금융위기가 끝나려면 한참 멀었다는 관측이 대두하는 등 미국의 거품 붕괴 후유증은 일본 못지 않게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미국도 일본처럼 장기불황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농후한가?
17일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금융감독 당국이 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일본 정부 관리들로부터 이미 지난해부터 오래전부터 조언을 구해왔으며 일본의 정책적 실패사례를 중점적으로 연구해왔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듯이 일본의 경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나 금융기관들이 문제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한 행동에 나서야 했지만 구조조정을 미적거리다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 금융산업의 투명성이 떨어지고 관치금융의 폐해가 심각한데다 감독기능마저도 취약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여기에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 재정집행과 정책금리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유동성 함정에 빠져들어 오히려 사태해결을 더 어렵게 한 것이 일본 정책당국의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이에 비해 미국의 경우 일본에 비해 상당히 신속한 대응에 나서고 있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미국이 올해 3월 베어스턴스의 매각과 양대 국책모기지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대규모 구제금융의 단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과 메릴린치의 매각 등이 신속히 이뤄지는데 대해 일본측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고 포스트지는 전했다.

일본 게이오대학의 다케모리 슘페이 교수는 "대선이 치러지는 해에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울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지만 미국은 예상을 깨고 행동에 옮겼다"고 말했다.

과거 일본의 금융감독당국이 금융기관들의 악성채무 문제 해결에 나서기를 거부하고 심지어는 은행들로 하여금 이를 은폐하도록 부추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미국은 금융정책 당국이 나서 금융회사들의 악성부채를 신속히 처리하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점이 일본과 차이점이지만 최근 금융시장 위기의 원인이 된 파생금융 상품의 경우 부실이 표면화되기 전까지는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점이 특징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사전에 신속히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의 시사주간시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말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이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미국의 과거 거품형성기를 비교할 경우 두 나라간에는 차이점보다는 유사점도 많다고 지적하면서 미국이 장기불황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 주목을 끌었다.

이 잡지는 일각에서 과거 일본의 거품이 미국에 비해 훨씬 크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1985-91년 전국 주택가격이 51% 상승한데 비해 미국은 2000-2006년에 주택가격이 평균 90%나 상승했다고 지적했다.

또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은 일본이 이 기간에 80% 상승한 데 비해 미국은 90%나 급등, 일본을 능가했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시장의 거품이 붕괴하기 1년전에 주식시장의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은행의 부실을 촉발시켰지만 가계에 미치는 충격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일본의 경우 전 인구의 30%만이 주식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전체의 50%를 넘는다.

일본이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집행을 크게 늘려 92-93년에는 연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8%를 나타냈으며 이 수치는 미국도 비슷하다.

이코노미스트는 만일 미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이 단순히 거시경제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건방진 태도가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여타 국가들의 사례에서 보건대 심각한 자산가격의 거품이 꺼진 후 수년간 경기하강이 지속됐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