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충북에 거주하는 주부 C씨는 지난해 무등록 대부업자로부터 80만원을 대출받기로 하고 선이자로 30만원을 공제한 뒤 50만원을 받았다. 10일 후 80만원을 상환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2주 후 30만원밖에 못 갚자 대부업자는 C씨의 승용차를 팔게 하고 500만원에 달하는 차용 증서를 허위로 작성해 강제로 공증을 서게 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사창가에 팔아 버리겠다' '이혼까지 당해 끝장을 봐라'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사례2 경기도 수원에 사는 P씨는 2003년 서울의 등록 대부업체인 M사로부터 생활자금 명목으로 300만원을 대출받아 5년간 이자 등을 꾸준히 상환해 왔다. 하지만 올 들어 가족의 수술 및 아내의 출산 등으로 가계 형편이 어려워져 연체하게 되자 M사의 채권 추심원은 임신한 아내에게 "돈 받으러 왔으니 문 안 열면 다 부수고 들어가겠다"고 위협을 가하는가 하면,충남 공주에 거주하는 노부모에게까지 찾아가 "빚이 260만원인데 돈을 안 갚으면 아들 부부가 거주하는 사돈 명의의 아파트를 압류하겠다"며 채무를 대신 변제할 것을 요구했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탤런트 안재환씨(36)가 사망 직전까지 빚 독촉에 시달렸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사채(私債)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다. 안씨의 지인들은 그가 40억원 정도의 빚이 있었는데,이 중 상당액을 사채 시장에서 조달했고 이 때문에 감금 협박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제10조는 채권자가 욕설,협박,감금 등으로 채무자의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거나 주변인에게 채무를 대신 변제할 것을 강요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추심 전문꾼까지 등장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 시.도에 등록된 대부업체는 지난 6월 1만8384개로 4년6개월 만에 6830개(59.1%) 증가했다. 등록 대부업체는 2003년 1만1554개에서 2005년 1만4556개,2006년 1만7539개,2007년 1만7911개로 빠르게 늘어났고 미등록 대부업체까지 포함할 경우 3만~4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업체나 사채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불법 채권추심 행위에 의한 피해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소액으로 사채를 시작한 영세업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대신해 추심 업무만 전담하는 전문가들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사금융피해센터에 접수된 불법 추심 관련 상담 사례는 2006년 295건에서 이듬해 450건으로 증가했고 지난 상반기에만 320건을 기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몇 년 사이 사채업에 뛰어든 사람들 중에는 사무실도 없이 생활정보지 등에 휴대폰 번호만 광고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온 사람과 커피숍 등에서 만나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채권 추심을 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에 추심 전문가들에게 용역을 맡기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채권 추심 전문가들은 적게는 사채업자가 받을 돈의 30%,악성 채무의 경우 80%까지 수수료로 받고 있다. 서울 신촌 일대에서 급전 대출을 하고 있는 한 사채업자는 "추심 전문업체 한두 군데와 끈을 맺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곳의 직원을 계약직 형태로 데리고 있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등록 대부업체도 못 믿어

2002년 대부업법이 시행된 직후만 해도 '등록 대부업체'와 '사채'의 구분이 명확했다. 등록 대부업체의 경우 법정 최고 이자인 연 49%를 지켰고 불법 추심 행위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문제는 영세 사채업자들이 등록 대부업으로 진출하면서 생기기 시작했다. 무등록 업자가 고리를 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지만 등록업자가 초과 이자로 적발될 경우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에 '일단 등록부터 하고 보자'는 사채업자들이 많아졌다. 대부업에 등록하면 최고 연 49%까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반면 무등록자는 연 30%까지밖에 이자를 받지 못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가 사채업을 찍어누르자 법의 보호를 받는 대부업의 우산 아래로 사채업자들이 대거 몰려들어갔고 그 결과 고리대금업자들이 등록 대부업 시장을 어지럽히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금융위 자료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를 포함한 사금융 대출의 평균 금리는 연 72.2%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웅환 금감원 유사금융조사팀장은 "부득이하게 사금융을 이용할 경우 커피숍 등에서 계약을 맺자고 하는 업자는 피하고 반드시 사무실 등이 갖춰진 업체를 이용하라"고 조언했다. 안 팀장은 "피해 사례를 접하다 보면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아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드시 계약서를 확보해 놓는 것도 차후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