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팀 = 채권시장 발 `9월 위기설'로 곤욕을 치른 국내 금융시장이 이번에는 미국의 금융위기로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예상대로 16일 원.달러 환율은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하면서 금융시장에서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한숨소리만 가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서브프라임(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의 종말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등에 따라 투자 심리가 얼어붙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대외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하고 충격을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 환시.증시 '패닉'
이날 외환시장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신청 여파로 공황 상태에 빠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4년 1개월 만에 최고 수준인 1천160원으로 치솟았다.

외환시장이 9월 위기설을 무사히 넘겼지만 여전히 달러화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단기간에 1,200원 대로 진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이 지속되면서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으로, 리먼브러더스에 이어 미국 최대 보험사인 AIG가 파산 신청을 할 경우 환율이 다시 폭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삼성선물 전승지 연구원은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환율 상승 시도가 지속될 것"이라며 "시장이 단기 과열(오버슈팅)되면서 환율이 1,200원 대로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고 있어 원.달러 환율의 추가 상승은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 등에 대한 달러화의 강세가 둔화되고 있어 미국 사태가 악화된다고 해서 원.달러 환율이 마냥 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AIG 문제 등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1,160원 수준에서 급등세가 진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는 투자자들이 불안감에 휩싸이면서 코스피지수가 작년 3월 5일 이후 처음으로 종가 기준 1,400선 밑으로 추락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주가가 크게 떨어져 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가격이지만 미국발 신용경색 위기가 단기간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적다는 점 때문에 쉽사리 매수 추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증권 이승우 연구원은 "미국에서 다른 금융기관의 추가 파산이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신용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며 "부실 확산 여부와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글로벌 공조 여부 등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에서는 미국발 악재로 안전 자산에 선호 심리가 확산되고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반영되면서 국고채 1~5년물 금리가 0.1%포인트 안팎 급락했다.

◇ 정부 "적기에 유동성 공급"
정부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해 다각도의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 급증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 자금 조달에 차질이 우려됨에 따라 적기에 외화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마련했다.

금융회사들의 외화 유동성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필요하면 스와프 시장(외화자금 대차시장)에서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현물환을 팔고 선물환을 사는 방식으로 금융회사에 부족한 외화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단기자금 부족에 직면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갖고 있는 환매조건부(RP) 채권을 사들여 자금난에 숨통을 터 줄 방침이다.

정부는 증시 폭락이 지속되면서 펀드의 대량 환매 사태가 벌어질 경우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시장안정기금을 조성해 투입하는 내용의 비상대책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런 최악의 상황이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환부를 드러낸 미국의 금융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받아 고비를 넘길 경우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안이 진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시장이 본격적인 안정 국면을 맞기 전에 거치는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진단했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은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 리먼 사태가 파산 신청으로 일단락됨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팽배한 불안전성을 빨리 제거해 신용경색을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전문가들 "악재 산적..낙관 힘들다"
전문가들은 미국발 글로벌 금융불안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우리나라 금융시장도 당분간 크게 출렁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동안 거론됐던 미 금융시장의 부실이 한꺼번에 해소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낙관론을 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이규복 연구위원은 "지난 3월 이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고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며 미국의 실물경제 위축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충격, 미국 중소형 은행의 파산 가능성 등을 잠재적인 불안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씨티은행 오석태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무너지면서 역설적으로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현재로선 서브프라임 부실의 끝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오늘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금리 결정, AIG 사태의 진정 여부 등이 고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외채를 많이 지고 있는 것이 앞으로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NH선물 이진우 금융공학실장은 경상수지와 자본수지의 동반 적자,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 등을 들면서 "달러화가 강세든 약세든 원.달러 환율은 대내적인 구조상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오늘 채권시장은 안전자산 선호 심리 등으로 강세를 보였는데 결국 증시, 환율과 더불어 `트리플 약세'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