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4월29일.박정희 대통령은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제6대 대통령 선거운동을 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약을 발표했다. 1964년 12월에 서독을 공식 방문한 그가 1932년에 건설된 본~쾰른 간 아우토반(autobahn)을 시속 180㎞로 달리며 고속도로의 경제적 효용성을 절감하고 간절히 꿈꿔 오던 터였다.

그러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고속도로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부유층의 유람로를 만들려느냐","1인당 GNP(국민총생산) 142달러인 나라에서 그게 왜 필요하냐" 등등…. 외국에서도 시기상조라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67년 11월7일 건설부 장관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했다. 다음 달 15일에는 '국가기간고속도로건설계획조사단'이 출범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들을 배석시킨 뒤 조사단원에게 일일이 임명장을 줄 만큼 애착을 쏟았다. 국토개발계획을 비롯해 각 노선과 단면도의 비교 검토 및 건설비 산출,용지 매수에 따르는 자료 등도 직접 챙겼다.

"현대 정주영을 불러."

박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에게 고속도로 건설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부탁이라기보다는 명령에 가까웠다. 마침 현대건설은 태국에서 99.7㎞의 고속도로 공사를 하고 있었다.


1968년 2월1일.서울 원지동에서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열렸다. 한반도의 국토를 뒤흔든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첫 발파 소리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밑거름이 됐다. 이미 박 대통령의 지시로 고속도로 기공식 석 달 전부터 육군의 3개 공병단이 공사를 시작했다.

현대건설은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정 회장도 진력을 다했다. 그 해 4월3일 오산∼대전 간 공구(106.6㎞),9월11일 대구∼부산 간(123㎞),이듬 해 1월13일에 대전∼대구 간(152㎞)이 착공됐다.

"공기를 앞당기자.평생 부르짖은 첫번째 구호이자 전략이다. 나는 당시로는 천문적이라 할 수 있는 800만달러어치,1989대의 중장비를 투입했다. 1965년 말 민간업체가 보유한 총 장비 수가 1647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해외에서 사들인 중장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땅에 태어나서' 정주영 자서전)

박 대통령은 마치 전쟁을 치르듯 직접 '전투병사들'을 지휘했다. 헬기를 타고 공사현장을 수시로 둘러보는가 하면 지프를 타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모든 사람들이 공기단축을 위해 그야말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겨울에는 언 땅 위에 짚을 깔고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지르고,트럭 꽁무니에 버너를 매달고 반복운행을 하면서 땅을 녹인 뒤 지반을 다졌다. 서울∼수원 간은 착공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21일에,수원∼오산 간은 같은 해 12월29일에 개통했다. 1969년에는 오산∼천안 간,천안∼대전 간,대구∼부산 구간이 완공됐다.

1970년 7월7일.서울∼부산 간 428㎞(현재는 직선화 등으로 416㎞)에 달하는 '검은 비단길' 개통식이 열렸다. 행사 세 시간 전까지 도로의 도색작업을 할 정도로 밀어붙여 착공 2년5개월 만에 맺은 결실이다. 당초 330억원으로 예상된 공사비는 설계변경과 물가상승 등으로 429억원이 들었다. 연 900만명이 공사에 동원됐고 165만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 개통 테이프를 자른 뒤 "가장 싼 값(1㎞당 1억원)으로 가장 빨리 이룩한 대(大)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는 한강의 기적을 견인한 대한민국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서울∼대전 간을 버스로 오가려면 무려 여덟 시간이 걸렸다. 경부고속도로는 대한민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바꿔 놓았다. 한국도로공사는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경제적 편익이 연간 13조5500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이후 호남,남해,영동,서해안,중부,중앙고속도로 등이 잇따라 건설됐다.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우리나라 고속도로 길이는 457.5㎞(경부 428㎞,경인 29.5㎞)로 하루 이용차량이 9000여대에 불과했다. 38년이 지난 현재 총 26개 노선 3368㎞로 하루 평균 360만여대가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총 연장 6000㎞의 고속도로를 구축할 계획이다.

그러나 도로에 비해 21세기의 신교통수단으로 재부상 중인 철도에 대한 투자가 그동안 거의 전무했다는 점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일호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부고속도로가 오늘날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끈 견인차였지만 자동차 중심의 도로교통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며 "고유가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철도의 투자를 늘려 균형 있는 교통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 구간은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만큼 제2경부고속도로와 서울 강남권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 지선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문권 기자 m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