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언급하며 울먹…"난 지배주주 아닌 경영자"

경영권 불법승계 및 조세포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자녀에게) 증여할 때 타이밍은 지시하지 않았고 완전히 운이었다"며 지시 여부를 부인했다.

이 전 회장은 자신이 기술개발 등 경영에만 매진하느라 재산 관리는 이학수 전 부회장 등이 맡아서 했다면서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또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될 것"이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민병훈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6번째 `삼성재판'에서 이 전 회장은 피고인 신문 도중 아들 재용씨 등에게 재산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것을 생각해봤느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그렇다"면서 "증여할 때 타이밍이 좋아서 조금만 투자해도 주식이 빨리 올라갈 때였다.

(타이밍을 잡으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고 완전히 운이었다"고 답했다.

이 전 회장은 "재용이 본인의 능력이 닿아야 하고 그 능력이 후계자로 적당하지 않으면 (그룹을) 이어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삼성그룹의 주인은 주주이며 본인은 완전한 경영자로서 지배주주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연구개발에 주력하면서 경영권은 어떻게 확보해왔느냐고 재판부가 묻자 그는 "경영권 확보다 뭐다 말을 많이 하는데 100% 주식을 가져도 회사가 능력이 없으면 (능력있는 회사의) 1%만 못하다"며 "정말 강한 경영권이라는 것은 회사의 운영 및 기술개발을 잘하고 회사가 건전하게 돌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지분을 어떻게 갖고 가느냐는 것보다 연구개발을 더해서 1등 제품을 더 만들고 열심히 경영하는 것이 수비"라며 이학수 전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사장이 자신의 지분 관리를 맡고 자신은 경영에만 매진해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전 회장은 재판부와의 문답 도중 "삼성 계열사 가운데 특별히 중요한 회사가 있느냐"는 물음에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꼽은 뒤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제품의 11개가 세계 1위이고 1위는 정말 어렵다"며 "그런 회사를 또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될 것"이라고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삼성생명에 대해서도 "국민의 생명을 쥐고 있는 것이고 적은 금액으로도 무거운 질병을 다스릴 수 있어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전 회장은 검찰 및 변호인 신문에서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 및 차명주식거래를 통한 양도세 미납 등은 모두 실무자들이 한 일이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법적으로 도의적으로는 제가 책임진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전 부회장은 피고인 신문에서 "에버랜드 CB 실권분을 재용씨가 인수할 것이라는 것을 비서실이 통보는 받았지만 CB 발행을 지시한 것은 아니다.

내가 재용씨와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같이 인수한 것도 회장의 지시가 아닌 말씀에 따른 것"이라며 극구 그룹 및 비서실 차원의 `지시' 의혹을 피해갔다.

이날 재판에는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와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양형' 증인으로 채택돼 이 전 회장 등에게 유죄가 인정됐을 경우 어느 정도 중한 범죄로 평가해야 하느냐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고, 이에 맞서 변호인 측이 신청한 최학래 전 한겨레 사장과 손병두 서강대 총장도 증인석에 섰다.

이 전 회장은 에버랜드 CB 편법발행 및 삼성SDS BW 저가발행에 따른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과 차명 주식거래를 통한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이학수 전 부회장 등 7명의 임원들과 재판을 받고 있으며 이달 16일 이전에 선고가 이뤄질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