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4일 이건희 회장이 '삼성 특검'에 출석하자 온통 참담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태원 자택에 주로 머물러온 이 회장이 최근 몇개월새 대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작년 말 이명박 대통령이 당시 당선자 신분으로 재계 총수들과 함께한 '경제인 간담회'와 이 대통령의 올해 2월 취임식 정도다.

같은 달 사돈인 고(故)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 빈소가 차려진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아 조문했으나 이것은 앞서 사례와 성격을 달리하는 케이스다.

이에 따라 삼성은 대외 행보를 자제해온 이 회장이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하는 장면이 방송전파를 타고 국내외에 전해지면서 해외 투자가와 주요 거래선의 신인도 하락을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론 대응에 발빠르고 치밀하다는 평가를 받는 삼성은 이날만큼은 공식 코멘트를 내지 않는 등 신중한 자세를 유지했다.

삼성의 고위관계자는 "설마했는데 막상 (이 회장의 소환에) 닥치고 보니 참담하고 혼란스럽다"고 삼성의 분위기를 전했다.

삼성 전략기획실과 계열사 직원들은 잠시 일손을 놓고 TV를 통해 생중계된 이 회장의 특검 출석 장면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한 직원은 "조속히 특검 조사가 마무리돼 하루빨리 경영 정상화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회장이 특검 사무실 포토라인에 서서 삼성이 범죄집단으로 비쳐지는 데 대한 생각을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런 걸 옮긴 여러분이 문제가 있지않나 생각한다"는 답변으로 불편한 심기를 표시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을 한 데 대해서는 "예상밖"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전략기획실 등 그룹의 중추 조직뿐 아니라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관계자들은 삼성의 해외 신인도 하락과 비즈니스 차질을 특히 우려했다.

삼성 전자 계열사의 한 임원은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이 회장의 강력한 리더십과 선견지명 때문이었다"면서 "이번 소환으로 인해 이 회장과 삼성의 신인도 하락과 성장동력 저하가 크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 임원은 "특히 삼성은 매출의 80%, 이익의 95%가 해외에서 창출되는데 해외 투자가와 주요 거래선의 삼성에 대한 신뢰가 실추될 것이 뻔하며, 이 점이 가장 걱정되는 대목"이라고도 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당장의 신뢰하락도 문제지만 '앞으로 이를 극복하는 게 더 걱정거리'라는 심모원려(深謀遠慮)의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올해 1월 시작된 특검이 오는 23일을 끝으로 마감되지만 그동안의 상처가 너무나 깊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차원에서다.

한 관계자는 "삼성의 이미지 하락, 임직원 사기저하 등으로 인해 경영차질이 심각해진 것을 우려한다"면서 "앞으로 과연 이를 회복할 수 있을 지도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특검이 끝나야 투자계획, 경영지표 등을 주주와 투자자들에게 좀 더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보고 1.4분기 실적발표 일자를 관행(4월 둘째주 금요일)보다 2주일 늦춰25일로 잡았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