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이 맞붙는다면 어디가 이길까.

공은 둥글고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내기를 한다면 맨유에 한 표를 던지는 축구팬이 많을 것이다.

맨유는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프리미어리그뿐 아니라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내고 있다.

반면 잉글랜드 대표팀은 역대 월드컵에서 신통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두 팀의 차이는 간단하다.

바로 혈통을 따지느냐,아니냐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잉글랜드 출신 선수들로만 구성된다.

선수 구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 맨유는 전 세계에서 모인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뛰고 있다.

실력만 있으면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다.

자연히 좋은 성적을 낼 확률이 높다.



맨유와 잉글랜드 팀의 비유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그동안 '단일민족'임을 자랑해왔다.

숱한 외세를 겪으면서 몸에 밴 단일민족 논리는 우리 국민을 단결시키고 위기를 극복하는 유효한 전략이었다.

작고 가난한 대한민국을 오늘날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변화시킨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금 모으기 운동이나 2002년 길거리 응원 같은 '감동 드라마' 역시 우리가 단일민족이라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일민족 전략의 유효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 요즘 국내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주요 공단지역에서는 동남아시아 출신 청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꺼리는 험한 일을 이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경제가 안 돌아간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또 신혼부부 열 쌍 중 한 쌍 이상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우리 사회가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고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결과다.

결과적으로 사회 구성원들은 그만큼 다양해졌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만연하고 국제결혼으로 태어난 다문화가정 자녀들과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기야 국제연합(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한국 정부에 인종차별을 개선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인종갈등'이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갈등은 글로벌화로 인해 변화된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치르는 단일민족주의의 기회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기회비용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단일민족주의는 우리의 미래 성장전략인 국제자유도시 건설이나 금융 허브 구축의 장애요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또 우수한 해외 인재 유입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족주의는 혈통이라는 제약 조건의 유무에 따라 흔히 혈통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와 시민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로 나뉜다.

한국의 단일민족주의는 대표적인 혈통민족주의다.

반면 미국 호주 중국 프랑스 캐나다 등은 시민민족주의를 택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원래 백인우월주의,중국은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라는 혈통민족주의적 요소가 다분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인종갈등이 심각해지자 전략을 바꿨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시민민족주의로 전환한 것.

특히 미국은 다민족.다문화 사회이면서도 국민들이 강한 애국심을 지니고 있다.

많은 홍보와 교육을 통해 시민권에 대한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은 덕분이다.

중국은 헌법에 다민족공동체를 명시하면서 55개 소수민족에 대한 우대 정책과 교육을 통해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는 '중화민족'이란 시민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는 개혁.개방 이후 국론 분열을 막고 경제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고심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도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 요구된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이 같은 고민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한국인 2세'들이 해외 스포츠 스타나 영화배우로 활약하는 것을 보며 열광하곤 한다.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는 일이다.

혈통민족주의에 근거한 이 같은 응원이 정서적 만족을 가져다줄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실제 우리나라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이다.

우리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려면 먼저 사회의 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혈통민족주의를 시민민족주의로 전환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인종갈등 문제로 생기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해외 인재들이 우리나라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적 톱 플레이어들이 선망하는 맨유처럼 우리나라를 매력있는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

최근 외국인정책위원회는 전문지식을 갖춘 외국인에게 복수 국적을 허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또 혈통민족주의에 기반한 교과과정 개편과 다문화가정 지원 정책도 하나둘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방인'이 혈통을 떠나 대한민국을 '내 나라'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글로벌 경제에 들어간 우리 사회의 과제다.

오대원 <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동북아경제연구실 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