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가 추락을 거듭하면서 글로벌 경제에 '주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달러 폭락은 미국 자산 매입 열기가 식은 상태에서 중국이 외환보유액 다변화를 시사한 게 '화근'이 됐다.

이는 '달러 리사이클'의 균열 신호로 받아들여져 달러에 대한 '팔자' 심리를 자극했다.


◆달러 리사이클링 균열

최근 달러 가치 하락의 기저엔 '달러 리사이클링 구조' 붕괴에 대한 우려감이 깔려 있다.

달러 리사이클링이란 미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로 해외로 유출됐던 달러가 미 국채 등 미국 내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들어오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해 외국인들은 8800억달러의 미국 자산을 매입했다.

이처럼 재활용(리사이클링)되는 달러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보전하며 달러 가치를 유지하는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미국 경제의 침체 등으로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이 위축되고 있다.

지난 8월 한 달 동안 해외 투자자들은 미국 유가증권을 1630억달러어치나 팔아치웠다.

특히 청쓰웨이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의 7일 '중국 외환보유액 다변화' 발언은 달러 리사이클링 붕괴에 대한 시장의 우려감을 높였다.

그는 "1조4300억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더 강한 통화를 사는 데 써야 한다"며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유로화 비중 확대를 시사했다.


◆금리 정책 진퇴양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8일(현지시간) "미국 경제는 신용 경색 위기에도 복원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국제 유가의 급격한 상승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을 증가시키고 경제 활동을 더욱 제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퇴양난에 빠진 FRB의 입장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침체가 걱정되고 금리를 내리자니 달러 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마찬가지다.

기준금리를 올리자니 유로 강세가 가속화될 것이 뻔하고 내리자니 인플레이션이 걱정이다.

그래서 8일(현지시간) 열린 ECB 금융통화위원회에선 현 4.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고육지책을 썼다.


◆아시아 통화 강세 지속될 듯

일부 전문가들이 유로화에 대한 달러 가치 하락이 끝났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최근 "달러.유로 환율은 이미 조정이 마무리됐다"며 "유로화에 대한 달러 가치 하락이 더 이상 계속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ECB가 더 이상 유로 가치 급등을 관망하기보다는 오랜 외환시장 불개입 원칙을 포기하고 시장 개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통화는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중국과 인도를 비롯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아시아 국가들이 경기과열과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긴축 기조를 강화할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아시아 통화의 강세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