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파문으로 야기된 신용경색 조짐을 해소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일단 거부했다.

서브프라임 '구원투수' 시기상조?
그러나 필요할 경우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는 여지는 열어놨다.

FRB는 7일(현지시간)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5.25%로 동결키로 결의했다.

FRB는 17번 계속된 금리인상 행진을 작년 8월에 멈춘 뒤 이번까지 아홉 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FRB는 회의 후 발표한 '통화정책 성명서'에서 "경제성장 둔화보다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해소하는 데 통화정책 목표를 두겠다"는 기존의 방침을 유지했다.

이로써 당분간 FRB의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는 힘들게 됐다.

FRB의 이 같은 결정은 경제가 예상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FRB는 "앞으로 수분기 동안 경제는 완만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최근 몇 주 동안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심화됐고 일부 가계 및 기업들의 신용이 경색됐으며 주택부문의 조정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혀 현재의 불안정성을 인정하기는 했다.

그러나 활발한 고용과 양호한 글로벌 경제 덕분에 경제성장세에는 별다른 악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버냉키 의장이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온 "서브프라임 부실 파문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FRB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한 우려도 그대로 유지됐다.


"근원인플레이션이 최근 몇 달 동안 완만하게 개선됐으나 지속적으로 개선될지는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따라서 통화정책의 주안점도 인플레이션 압력 억제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참가자들은 FRB가 금리를 동결하더라도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기를 기대했었다.

버냉키 의장은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아직까지는 경제가 견딜 수 있는 만큼 구원투수로 나설 타이밍이 아니라는 점을 천명한 셈이다.

결국 FRB가 섣불리 개입해 또다른 후유증을 낳기보다는 일정한 손실(500억~1000억달러 추정)을 감수하더라도 시장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물론 그렇다고 언제까지 나몰라라 하는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니다.

성명서 말미에 "미국 성장률이 하락할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고 표기해 서브프라임 파문이 생각보다 심각함을 인정했다.

이는 여차하면 FRB가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필요할 경우 구원투수로 나설 수 있다는 의미다.

이로 인해 월가 일부에서는 FRB의 매파적 입장이 중립적으로 선회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FRB 발표 이후 하락하던 뉴욕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FRB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동안에도 서브프라임 파문은 계속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업체인 루미넌트 모기지 캐피털은 새롭게 파산 위기에 몰렸다.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보다 신용도가 한 단계 위인 알트에이(Alt-A) 모기지를 담보로 발행된 채권 9억1400만달러에 대해 신용등급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