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중인 국제상사의 새 주인으로 'E1'이 유력한 가운데 '대어'를 놓친 이랜드는 그동안 쏟아부은 550억원의 투자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E1과 국제상사 현 경영진이 법정 다툼 조기 종료를 위해 이랜드에 제의했던 구(舊)주권 매입과 소각 등 일련의 회유책을 거둬들이고 "모든 것은 법정에서 가린다"는 강경한 태도로 돌변,이랜드를 당황하게 하고 있는 것.이들이 입장을 바꾼 것은 그동안 법정 다툼에서 꾸준히 이랜드의 손을 들어줬던 부산고등법원 담당 재판부가 최근 법원 인사로 대폭 바뀌면서 정리법원인 창원지방법원의 매각 작업에 걸림돌이 제거됐기 때문이다.

법원 정기인사 '불똥'

최근 실시된 법원 정기 인사에서 그동안 국제상사 관련 소송건을 주로 담당해 온 부산고법 민사1부와 민사2부의 판사들이 대폭 물갈이 됐다.

대표적으로 7월28일 이랜드가 제출한 '수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E1으로의 매각을 '올 스톱'시켰던 장모 판사가 형사1단독으로 옮겨 갔다.

반면 국제상사를 법정관리하고 있는 창원지법 민사11부 판사들은 그대로 유임됐다.

국제상사 인수를 놓고 일이 복잡해진 것은 2002년 11월 법정관리 상태에 있던 국제상사의 최대 채권기관 우리은행이 블록세일로 매각한 출자전환 주식 500억원어치(지분 51.7%에 해당)를 이랜드가 매입하면서부터.이랜드가 최대 주주로 떠오르자 국제상사 법정관리인과 노조측은 "법정관리 상태에서의 구(舊)주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이듬해 3월 창원지법에 유상증자 후 주식 매각을 통해 새 주인을 찾는 회사정리계획안을 제출했다.

창원지법은 이 안(案)을 받아들였고,이에 근거해 지난 4월 실시된 공개매각 입찰에 효성 등과 함께 참여한 E1이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됐다.

그러나 부산 고법은 "주주 등 관계인 집회 없이 매각결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며 이랜드가 제기한 항고에서 이랜드측 손을 들어줬다.

올 들어서도 회사 매각 작업을 중지시켜 달라는 이랜드의 수행정지신청을 창원지법은 기각한 반면,부산고법은 받아들여 매각 작업이 일시 중지됐다.

이런 사정 때문에 이랜드측은 지난 7월18일 창원지법이 E1을 국제상사 매각 우선협상자로 최종 확정했을 때도 "모든 것은 고법까지 가봐야 안다"고 큰소리를 쳤었다.

E1 "법대로 하자" 버티기로 선회

E1은 총 8550억9500만원의 인수대금 중 4501억원을 유상증자에 투입,신주 9002만주(주당 5000원)를 취득함으로써 지분율 74.1%로 국제상사 최대주주가 된다는 계획이었다.

나머지 4050억원은 국제상사의 기존 회사채를 사들이는 데 썼다.

경영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인 이랜드에 대해서도 분쟁의 조기 종료를 위해 구 주권을 주당 5000원에 매입,투자금을 회수할 길을 열어주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되면 550억원에 국제상사 지분 51.7%를 매입했던 이랜드는 약 820억원을 손에 쥐게 된다.

하지만 이번 법원 인사 이후 E1은 태도를 싹 바꿨다.

E1 관계자는 "이랜드와 별도의 협의 없이 모든 것을 법원 판단에 맡기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밝혔다.

이랜드의 수행정지신청을 받아들였던 부산고법 재판부가 바뀐 만큼,부산고법에 계류돼 있는 '정리계획변경안'에 대한 전향적인 판결이 가능해졌다는 판단에서다.

수행정지신청이 '가처분'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판결을 앞둔 정리계획변경안 승인 건은 '본안 소송'에 해당돼 여기서 이길 경우 인수 작업을 곧바로 속개할 수 있다.

유상증자 후 이랜드의 지분율은 16%로 떨어지는 데다 E1이 매입해주지 않으면 이를 시장에서 처분해야 한다.

현재 국제상사 주식은 매매거래정지 상태로 장외에서 1400원대에 거래되고 있어 이랜드 보유 지분의 평가액은 230억원대에 불과해 투자자금 본전을 건지기도 어렵다.

이에 대해 이랜드 그룹 관계자는 "재판부가 바뀌었다고 E1 측에 유리한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단정짓기 힘들다"며 "그리고 어떤 경우라도 투자자금의 회수는 법적으로 보장돼 있다"고 말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