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이 기업공개 유상증자 등 주식 형태로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 게 아니라 기업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또 상장사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수액도 앞질렀다.

28일 증권선물거래소와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이 순매수(취득-처분)한 자사주는 4조3505억원에 달했다.

작년 한 해치(4조8265억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반면 증시를 통해 주식 형태로 조달한 자금은 1조8809억원에 머물러 자사주 매입액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올해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은 2조~3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2003년 7조7000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4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자사주 순매수액은 9조5965억원인 데 비해 증시 조달 자금은 9조3563억원으로 역시 자사주 매입액이 증시 자금조달액을 앞질렀다.

기업별로는 삼성전자의 경우 지속적인 자사주 매입으로 발행 주식의 12%를 자사주로 보유 중이다.

또 기업사냥꾼 '아이칸연합'의 위협에 시달렸던 KT&G는 올 예상순이익의 1.6배를 자사주 매입에 투입할 예정이다.

'자본시장의 꽃'으로 불리는 증시가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주는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막대한 기업자금을 빨아들이는 자기 모순에 빠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주주 중시 경영과 일부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자사주 매입이 유행처럼 확산되고 있는 데 비해 투자 부진 등으로 증시로부터의 자금 조달은 크게 줄고 있다고 풀이했다.

또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들이 무리하게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는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