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월드컵'의 무대인 독일에서는 경기만큼이나 세계 주요 기업들의 마케팅 열기도 뜨겁다.

기업과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고 글로벌 매출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투자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한국 정부는 독일 현지에 산업자원부 관계자들과 투자유치 전담 기관을 파견,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투자유치 마케팅에 돌입했다.

한국노총까지 우호적인 투자환경 알리기에 나섰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이번 월드컵을 공식 스폰서한 기업들이 주목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아디다스 코카콜라 도시바 등 13개 해외 기업과 함께 스폰서로서 어깨를 나란히했다.

이들 업체의 스폰서 총액은 4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업체당 평균 약 3000만달러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벤츠 BMW 등 독일 굴지의 자동차 업체들을 따돌리고 자동차 스폰서로 활약하고 있다.

전세계 축구 인사들을 위한 차량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인 대상으로 회사 이미지와 제품 브랜드를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식 스폰서는 아니지만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들도 월드컵 특수를 놓칠 리 없다.

LCD TV 등 자사 제품에 대한 참신하고 기발한 마케팅 및 판매 아이디어를 채택해 독일 소비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월드컵 열기 속으로 뛰어든 이들 업체는 독일 현지에서 기술력과 품질을 자랑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

독일 월드컵을 향후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디딤돌로 삼겠다는 장기적 포석이다.


월드컵 개막 첫날인 10일(현지시간).A조 독일과 코스타리카의 예선 첫 경기가 열리는 독일 뮌헨 시내는 두 나라의 서포터스가 뿜어내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골목 골목을 누비며 응원구호를 목이 쉬어라 외치며 몰려다니는 서포터스 사이로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수더분하게 생긴 다섯 명의 아줌마를 모델로 내세운 삼성전자의 LCD TV '보르도' 광고다.

바로 옆에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독일 대표팀의 미드필더 '미하엘 발락'을 모델로 내세운 소니의 광고가 나란히 붙어있다.

발락에 비해 한참 지명도가 떨어지는 모델인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은 삼성전자의 광고를 쳐다보며 의미있는 미소를 짓는다.

도대체 저 아줌마들은 누구지?

"1990년 월드컵 당시 독일 우승의 주역인 마테우스 브레메 슈마허 헤슬러 로이테 등 전 독일 대표팀 선수 5명의 부인들이에요.

독일인들의 우승 향수를 자극하자는 전략으로 만든 광고죠."(삼성전자 독일법인 관계자)

삼성전자의 이 광고는 비단 1990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독일에서는 TV를 살 때 남편이 혼자 결정하기 보다는 부인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한 광고다.

특히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부들을 광고에 출연시킴으로써 경제력 있는 여성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하자는 의도도 숨어 있다.

올림픽과 더불어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각국 서포터스와는 다른 이유로 글로벌 기업들은 독일 각지에서 피말리는 게임을 펼치고 있었다.

바로 '마케팅 대전'이다.

길게는 1년,짧게는 한 달에 걸쳐 짜놓은 각 기업의 마케팅 전략의 승부가 곳곳에서 갈린다.

승자는 웃고 패자는 눈물을 머금는 순간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월드컵을 맞아 필립스 소니 파나소닉 샤프 모토로라 노키아 등 글로벌 전자업체들과 일전을 겨루고 있다.

독일월드컵 기간 마케팅에 투입하는 돈만 무려 1000만유로(약 100억원).

우선 독일 유력 방송사인 'ZDF'와 최대일간지인 '자이퉁'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싣고 뮌헨 베를링 프랑크푸르트 등 7개 전략도시 20곳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었다.

격전을 준비하느라 직원들도 매일 밤 11∼12시에 퇴근할 정도였다.

김동민 삼성전자 독일법인 차장은 "밤에 아이들 얼굴 본 지 오래됐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는 일단 초반 마케팅은 대성공으로 평가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니는 발락에 500만유로나 주고 광고계약을 맺었는데,우리는 그보다 훨씬 적은 액수로 독일 고객들의 지갑을 열 수 있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독일의 관문인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입구에도 초대형 애니콜 광고 입간판을 설치,독일을 찾는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정부의 협조를 얻어 공항 내 루프트한자 비즈니스 라운지에 LCD TV 27대와 PDP TV 3대를 설치했다.

삼성전자의 이번 월드컵 마케팅 전략은 어렵사리 차지한 평판 TV 시장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일본 소니를 제친 데 이어 12월엔 15%대의 점유율을 기록,이전까지 40년간 1위를 달리던 필립스마저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 4월 말에도 독일 LCD TV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19.6%의 점유율로 필립스(18.6%)를 앞질렀다.

강승각 삼성전자 독일법인장은 "휴대폰으로 각인된 삼성의 브랜드 인지도가 이젠 평판 TV 시장에서도 힘을 더해가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의 종국적인 목표는 2010년까지 독일에서 가장 신뢰받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뮌헨·프랑크푸르트(독일)=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