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현대차 그룹 계열사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24일 정몽구 회장 소환 조사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한 달 만에 끝난다.

검찰은 현대차 임직원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 등의 조사와 압수물 분석 등을 통해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과 경영권 편법비리, 금품 로비 등의 범죄를 총괄한 정황을 잡고 소환조사 후 사법처리한다는 내부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법대로 처벌했을 경우 현대차 그룹의 국내외 사업 차질, 경영공백에 따른 하청업체 피해, 국가신인도 하락 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검찰 내부에서는 사법처리 수위를 놓고 한 때 강경론과 온건론이 엇갈렸다.

계열사 부채 550억원을 탕감받으려고 국민의 혈세를 쓰는 등의 범죄를 저지른 만큼 그룹 총수를 구속해야 한다는 수사팀과 재계 여론 등을 의식한 검찰 수뇌부가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이다.

검찰이 한동안 정 회장 처벌 수위 문제로 내부 혼선을 보이는 듯했으나 최근에는 정공법을 선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며 이처럼 강경론이 힘을 얻은 데는 SK사건 수사 경험이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4월 독점거래법상 출자총액 제한제도가 실시되자 그룹 지배권을 잃을 것을 우려한 SK측이 비상장사와 상장사 주식을 맞바꾼 게 문제가 돼 당시 최태원 회장이 구속기소됐다.

최 회장이 SK글로벌의 1조5천억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하고 워커힐호텔과 SK㈜ 주식 맞교환으로 959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정황이 포착돼 검찰 수사를 받았을 당시 재계 등의 움직임은 요즘 상황과 너무 흡사했다.

그룹 총수의 불법행위가 명백했지만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들은 정부와 재계간 협력ㆍ대화 차질, 기업활동 위축, 국가신인도 하락 등을 우려하며 검찰을 압박했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수사 가능성이 점쳐지자 최근 경제단체들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한 것과 너무나 닮은 꼴이다.

2002년 당시 경제단체들은 미국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SK㈜의 신용등급을 한 단계 낮춘 것을 계기로 경제위기 분위기를 고조시켰지만 검찰은 이에 굴하지 않고 최 회장을 구속기소하는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구속기소 이후 기업경영이 잠시 주춤하는 듯 했으나 1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자 재계의 걱정과 달리 SK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큰 폭으로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1인 지배체제 그룹의 총수가 그동안 그룹경영의 실질적 `걸림돌'이 됐다는 점에서 주식 투자자들은 총수 실형선고가 기업경영에 해를 끼치기는 커녕 오히려 `투명경영'에 도움을 줄 것으로 판단, 악재가 아닌 `최대 호재'로 작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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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리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 수사팀은 SK사건의 전례를 떠올리며 처음부터 강경론을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는 "SK사건 수사 때도 최 회장을 구속하면 그룹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재계의 압력이 거셌지만 오히려 투명경영이 확보돼 그룹 구조가 개선됐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수감 생활 7개월만에 법원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나 재판을 받다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경영권 확보와 신병 문제를 일거에 해소했다.

따라서 정 회장이 구속되면 오히려 `기업 투명성'이 높아져 현대차의 체질이 개선되면서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검찰 주변에서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도 그룹 총수 구속이 기업투명성 제고로 이어진 `SK 사건'의 교훈을 벤치마킹해야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이번 주말께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는 정 회장의 사법처리 수위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