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메트 풍자 만화로 촉발된 유럽과 이슬람의 충돌,중남미 좌파와 미국의 대립은 이념 갈등이라는 날카로운 칼날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진정되기 어려운 폭발성을 갖고 있다. 전문가들은 폭력 사태는 시간이 가면 진정되겠지만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앞으로 세계 경제에 최대 복병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 주도력 약화와 소득격차 확대 이념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 원인 중 하나는 미국의 주도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손성원 로스앤젤레스 한미은행장은 "그동안 세계 경제에서 주도국이 주는 안정 효과(mainstream's safety valve effect)가 컸다"며 미국의 위상 약화를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그는 "미국 경기가 둔화된다면 세계 각국 간 협력관계가 악화되면서 혼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시장 경제가 확산되면서 갈수록 빈곤국과 부국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되는 것도 갈등을 빚는 주요인이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 회원국 기준으로 소득 상위 20개국과 소득 하위 20개국 간 격차가 10년 전 약 7배에서 지난해에는 10배로 확대됐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국에 대한 서방의 지원은 인색해지고 빈곤 퇴치를 다루는 각종 국제회의도 '회의론'이 일어날 만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해 개도국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 등이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빈곤국에 지원한 규모는 유엔의 권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0.7%에 크게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매년 감소해 왔다. ◆개도국 결속은 강화 서방국을 중심으로 운영돼 온 국제 회의에 대항해 빈곤국을 중심으로 개도국 간 결속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또 하나의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2001년부터 세계경제포럼(WEF)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운용돼 온 세계사회포럼(WSF)이 대표적이다. 이 포럼은 올해부터 아프리카 사회포럼,중남미 사회포럼,아시아 사회포럼으로 세분화돼 지역별 빈곤 퇴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슬람과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IMF와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의 이탈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IMF의 1,3위 채무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IMF에서 빌린 155억달러와 95억달러를 일찌감치 갚은 데 이어 파키스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도 조기 상환 방침을 시사하는 등 국제 기구에서 속속 떠나고 있다. 모건 스탠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는 "세계 경제가 안고 있는 수많은 경제 현안 가운데 빈곤국을 중심으로 한 개도국들의 이탈 조짐이 가장 큰 불안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이기주의는 기승 경제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사례는 자원을 무기화하려는 중남미다.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달 말 중남미 사회포럼에 참석,"미국의 제국주의를 막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국들이 결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원 민족주의로 치닫고 있는 이런 움직임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전력하느라 뒷마당 격으로 생각했던 중남미에 외교다운 외교를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그 과정에서 미국은 신고립주의에 빠졌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김박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미국이 최대 현안인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에 통화 가치 절상과 시장개방 압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며 "그런 움직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상춘 논설·전문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