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금지가 결국 해제 절차를 밟게 됐다. 지난 2003년 12월 미국 워싱턴주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면서 수입금지가 취해진지 2년여만이다. 농림부는 조만간 협상 개시 여부를 결정한 뒤 미국과 구체적인 수입조건에 대한 협상에 들어갈 예정이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방침은 최근 일본이 수입재개를 허용함에 따라 어느 정도 예상돼온 것이긴 하지만 쇠고기 공급물량 증가로 인한 가격폭락 등 국내 축산농가에 적지 않은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 "일본도 했는데.." 수입재개는 고육지책? 미국은 수입금지가 취해진 2003년 12월부터 농무부 장관 특별보좌관 등을 한국에 보내 안전성 확보 조치 등을 설명하면서 수출 재개 희망의사를 꾸준히 내비쳐왔다. 이에 따라 미국측의 요청으로 지난 2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국간 광우병 전문가회의를 시작으로 공식 협의가 개시됐다. 아울러 미국은 지난 3월 역시 광우병 발생국인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재개를 결정하는 등 자국산 쇠고기 수출의 대외 명분을 쌓는 작업도 착실히 밟아왔다. 이 과정에서 국제 축산물 교역기준을 관장하는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뼈가 제거된 생후 30개월 이하의 소 살코기에 대해서는 광우병 발생과 상관없이 교역이 자유화되도록 동물위생규약을 개정한 것도 미국측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올 6월 초에는 소비자 단체의 현지 방문 조사와 3차 전문가회의가 열리는 등 양국간 협의가 빨라지면서 연내 수입이 재개될 것으로 점쳐졌었다. 그러나 6월 말 미국에서 추가로 광우병 감염 소가 발견되면서 수입 재개가 미뤄져 왔다. 농림부는 지난달 29일과 이날 두 차례에 걸쳐 가축방역협의회를 열고 수입재개 문제를 논의했으나 수입재개가 불가피하다는 의견과 추가적인 안전 확보책과 축산농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농림부 장관이 가축방역협의회 결과를 토대로 협상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우리나라와 입장이 비슷한 일본도 앞서 지난 12일 수입재개를 결정했고, OIE 규약 등 국제통상기준 등을 보더라도 더 이상 결정을 미루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앞으로 구체적인 수입조건에 대한 양국간 협상과 수입위생 조건 개정 고시, 수입허용 도축장 지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빠르면 내년 상반기 중 시판이 재개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은 "한.미 양국간 협상을 통해 수입재개 조건을 결정하고 수입위생 조건 개정 고시, 수입허용 도축장 지정 등의 절차를 고려하면 실제 수입 재개에는 3∼4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소비자 가격은 내리겠지만..축산농가 타격 우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국내 한우농가는 물론 돼지, 닭 사육 농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파급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경우 한우 산지가격은 쇠고기 공급물량 증가로 6.4∼39.2%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쇠고기 가격이 떨어지면 국산 돼지고기와 닭고기 가격도 덩달아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쇠고기 대신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소비했던 소비자들이 공급량이 늘어나 가격이 내린 쇠고기를 찾게되면 돼지고기와 닭고기 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된 이후 대체육류로 각광을 받았던 돼지고기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산지가격이 4.1∼18.5%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닭고기 산지가격도 1.9∼14.5%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에 따른 불안심리로 한우 농가에서 홍수출하를 하면 쇠고기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농가에서 출하 두수를 늘려 한우 산지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농협에 따르면 10월 초 약 450만원하던 산지 소값(수소 500kg 기준)은 현재 392만원(12월12일 기준)까지 떨어져 10% 이상 하락했다. 한우 산지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사육두수가 늘어난 데다 미국산 쇠고기수입재개에 대한 불안심리로 농가에서 출하 물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2003년 12월 148만두였던 한육우 사육두수는 올 9월 182만5천두로 불과 2년 사이 20% 이상 늘어났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8월 762개 한육우 농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조사 농가의 95%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가 한우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 남호경 한우협회 회장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되면 쇠고기 가격이 크게 떨어져 사육두수를 늘렸던 한우 농가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쇠고기 유통 투명성 제고돼야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쇠고기 유통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입 쇠고기가 한우로 둔갑 판매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YWCA가 지난 10월 한우만을 판매한다는 서울 시내 80개 음식점에서 등심, 갈비 등 부위별 고기 80점을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의뢰해 DNA 검사를 실시한 결과 30%에 해당하는 24개 업소에서 수입육과 육우 등을 한우로 속여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는 지난 1일 본회의에서 일정 규모 이상 음식점에서 쇠고기를 판매할 경우 의무적으로 원산지와 종류를 표시토록 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음식점 쇠고기 원산지표시' 제도는 2007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어서 내년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재개될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부정유통이 우려된다. 농촌경제연구원 정민국 박사는 "수입 쇠고기의 둔갑 판매 등 부정유통을 근절하고 유통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쇠고기 이력추적시스템 정착, 음식점 원산지표시 제도 시행 등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원산지 표시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호해주는 차원의 일일 뿐 아니라 시장 개방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축산농가에도 활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yunzh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