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는 지금 휘파람을 불고 있다. 중국의 철강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 우려 전망이 나오지만 아직은 호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실적을 보자. 철강 가격이 급속하게 회복되면서 지난해 매출과 순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위축됐던 국내 설비투자가 되살아나고 해외투자도 늘어나 글로벌 경영이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역시 증가하고 있으며 혁신활동이 활발하다.


불황의 추억을 되새기며 잘 나갈 때 더 담금질해 보자는 각오다.


지난해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의 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가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업계 구조조정까지 마무리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지난 2002년 미국의 철강산업 분석기관인 WSD에서 당시 세계 철강업계가 '죽음의 계곡(Death Valley)'를 지나고 있다고 분석한 것과는 딴판이다. 당시 대표적 철강재인 열연코일 국제가격이 t당 2백달러를 밑돌 정도로 철강불황이 심각했었다.


철강수요 감소에 공급과잉마저 겹쳐 2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격 폭락이었다.


중국과 미국은 철강수입을 제한하는 보호무역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국내에선 감산의 분위기가 감돌았으며 업체들의 실적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철강업계 부활의 시동은 철강가격 회복에서 걸렸다.


2002년 t당 180달러로 고꾸라졌던 아시아지역 열연강판 가격(가전,자동차 등의 냉연강판 소재용 고급재 기준)은 지난해 1분기 t당 300달러로 올라서더니 올 1분기에는 t당 600달러대로 진입했다.


철강가격 상승은 업계의 실적을 한껏 밀어올렸다.


한국철강협회가 12월 결산 25개 철강업체들의 지난해 실적을 조사한 결과 매출액은 41조3043억원으로 전년 대비 32.2% 증가했다.


순이익은 5조6917억원으로 96.2%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극심한 원자재난 탓에 원가가 39% 증가했지만 철강 판매가 늘어나고 판매단가도 높아져 매출액 경상이익률이 18.5%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해 실적을 갈아치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적이 늘어나자 철강업계는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75% 늘어난 4조4640억원으로 잡았다.


지난 97년(4조5100원) 이후 최대 규모다.


포스코의 차세대 공법인 파이넥스(FINEX) 등에 대한 설비투자, 동부제강의 아연도강판 신증설,INI스틸과 현대하이스코의 당진공장(옛 한보철강) 정상화를 위한 투자확대 등이 즐비하다.


교토의정서(기후변화협약) 등 환경문제가 부상하면서 올해 예정된 환경설비투자 규모도 사상 최대 수준이다.


전년 대비 21.8% 증가한 2378억원에 달할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R&D 투자 규모는 4047억원으로 지난해보다 24.9%나 증가했다.


투자는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글로벌 경영의 기치 아래 중국은 물론 인도 브라질 등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생산 및 판매를 현지화하고 원자재를 수월하게 확보하려는 전략적 포석에서다.


대표주자는 업계 맏형인 포스코다.


1970년 초 포항 모래벌판에서 일군 신화를 중국 인도 브라질에서 다시 한번 일으킬 태세다.


현재 가시화되고 있는 지역은 인도다.


포스코는 인도 오리사주에 연산 1200만t 규모의 종합제철소를 건립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도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업무·품질·공정부문 등의 혁신과 기술개발 노력은 어떨까.


포스코의 PI(업무혁신)와 6시그마 운동,INI스틸의 '테이크-오프(Take-Off)' 혁신운동,현대하이스코의 공정변화혁신(PCI),창원특수강과 동부제강의 6시그마 운동 등 그야말로 혁신 바람이 불고 있다.


포스코의 PI는 정보기술(IT)을 접목한 업무혁신으로 대우조선해양 등 다른 업종으로도 확산되고 있을 정도다.


포스코는 또 6시그마 운동을 통해 최근 3년간 2600여건의 과제를 수행해 7000억원의 재무적 성과를 달성했다.


기술연구소 설립 붐도 이에 못지 않다.


동국제강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중앙기술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하이스코도 철강 신소재 연구실과 기술연구소 건립을 검토하고 있으며 동부제강은 최고기술경영자(CTO) 직책을 처음으로 두고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물론 걱정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업계는 당장 중국의 철강 수급동향 및 수출입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중국이 대대적인 증설을 통해 철강제품을 본격 수출하기 시작할 경우 전세계적인 철강 공급과잉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철근 등 저가의 중국산 철강제품이 대량으로 국내 수입되고 있어 관련 피해를 호소하는 업체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다 세계적인 경기 회복세가 주춤거리고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기 회복세를 타고 철강수요가 늘어나지 않는데다 중국의 철강재 대량 수출로 공급이 넘쳐나면 철강가격 하락이 초래될 수 있다.


최근 유럽지역의 일부 대형 업체가 현지의 경기회복이 시원치 않자 수개월간 철강가격 동결을 선언하고 일부 업체들이 감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분명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