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꾼 행장,김정태 주가,김정태식 경영'등 숱한 신조어를 만들어낸 김정태 행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전문경영인이다. 1947년 광주시 광산에서 태어난 김 행장은 광주일고와 서울대 상대,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난 76년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대신증권에서 그는 34세의 나이에 상무로 승진,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후 97년 동원증권 사장,98년 옛주택은행장의 자리에 올랐다. 김 행장이 '뉴스메이커'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98년 6월 비즈니스위크지에 김대중 전대통령과 함께 '아시아의 스타 50인'에 선정되면서 부터다. 이후 주택은행장 시절엔 월급을 1원만 받는 대신 40만주가 넘는 스톡옵션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지난 10년 이상 한국 금융계를 대표하는 CEO로 자리를 지켜온 김정태 행장.그의 공과를 평가한다. 김정태 행장은 스스로를 '장사꾼'이라고 말해왔다.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고 이익을 최대화 하는 게 그의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김 행장의 이같은 경영철학은 외국인 주주들로부터는 환영을 받는 동시에 정부와의 마찰을 야기했다. 대표적인 예는 지난해 발생한 LG카드 사태. 당시 정부는 LG카드의 파산은 한국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시중은행들에 출자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행장은 "주인없는 LG카드에 출자전환할 수 없다"며 끝까지 버텨 결국 산업은행이 LG카드를 떠안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은행에 손해가는 일'이라면 정부가 뭐라하든 절대로 하지 않는 게 김 행장의 경영스타일이었다. 김 행장은 평소에도 '정부간섭'에대한 반감을 자주 표현했다. 최근 청와대 주재 금융기관장 간담회에 참석한 후에는 "미리 주어진 발언만 하도록 주문을 받아 막상 하고 싶은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고 정부의 권위주의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행장은 귄위주의를 싫어하는 CEO로도 유명했다. 그는 은행장이 된 후 임원전용 엘리베이터와 임원식당을 제일 먼저 없앴다. 또 은행장 수행비서와 서면 회의자료를 폐지했다. 또 능력만 있다면 나이에 관계없이 승진발탁인사를 단행했다. "보수성이 강한 은행에서 이같은 조치들은 당시 혁명적으로 느껴졌다"는 게 국민은행 직원들의 평가다. '맺고 끝는 게 명확한 것'도 김 행장의 경영스타일이다. 국민은행 부행장의 평균 임기는 채 2년이 못된다. 김 행장으로부터 '해임통고'를 받았던 국민은행 전 부행장들은 하나같이 "잔인할 정도로 차갑게 해임통보를 해와 반발도 못하고 행장실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특히 지난해 폐병으로 투병 후 국민은행에 돌아와서는 3명의 부행장을 한꺼번에 해임시키는 단호함을 보이기도 했다. "김 행장의 이같은 모습은 조직의 원칙을 세우는 데는 기여했을 지 몰라도 그의 주위에 사람이 없는 이유가 됐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평가다. 이밖에 '투명경영'을 본격 도입한 것도 김 행장의 업적으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김 행장의 경영스타일은 장점과 동시에 많은 문제점도 노출했다. 우선 그의 '단호함'뒤에는 '따뜻함'이 부족해 직원 통합에 실패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통합 4년째인 오늘날까지도 옛국민은행 노조와 옛주택은행 노조는 화학적 통합에 실패했다. 이밖에 지난 5년간 총 1천4백억원을 쓸 정도로 맥킨지컨설팅에 중독된 점도 김 행장의 과오로 지적되고 있다. 최철규 기자 gr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