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코미디사(史)를 돌아보면 '바보 열전'이라 부를 만하다. 멍청한 캐릭터로 일세를 풍미한 코미디언들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 배삼룡씨와, 5공때 이주일씨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찔렀다. 군사독재 아래 입이 있어도 말 못하던 서민들은 배씨가 두 다리를 흔드는 '헐랭이 춤'이나, "뭔가 보여드리겠다"며 오리궁둥이 춤을 추는 이씨에게 열광했다. 6공 이후 말문이 트이면서 한자성어를 줄줄 읊어대는 똑똑한 '배추머리'(김병조)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사정(司正)과 개혁으로 출발했다가 외환위기와 측근비리로 마감한 YSㆍDJ 시대엔 영구(심형래), 맹구(이창훈ㆍ심현섭) 등 '한복 입은 바보들'로 다시 회귀했다. 이들은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풍진 세상을 황당하게 비웃었다. 이쯤되면 코미디속 바보 캐릭터와 시대의 상관관계가 새삼 놀랍지 않은가. 참여정부 출범 후 새롭게 뜬 '바보'는 정준하다. 그가 어눌하게 "저를 두번 죽이시는 거예요"라고 외치듯 요즘 서민들은 두 번 죽고 있다. 화창한 봄날에 끝간 데 없는 경기불황과 탄핵정국으로,대한민국에 사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 사상 초유의 탄핵 결의는 1백20년 만에 되풀이된 '갑신정변'이었다. 식자들로 하여금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가, 되풀이되는가'를 새삼 고민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은 지금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국회 탄핵소추권과, 국회 의결을 헌법재판소가 최종 심결하도록 규정한 헌법의 3권분립을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다. 3월도 벌써 셋째주다. 월요일(15일)이면 4ㆍ15 총선이 꼭 한 달 앞이다. 국민들의 시선이 온통 정치에 쏠릴 수밖에 없다. '행정의 달인'이라는 고건 총리가 팔자에 없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아 처음 주재하는 국무회의(16일) 표정이 궁금해진다. 그래서인지 '빈사 경제'가 설 자리는 더욱 비좁게 느껴진다. 지난 주말 내내 동분서주한 이헌재 부총리의 이번 주 공식 행사일정은 국무회의와 경제장관간담회, 정례기자회견(19일) 등이다. 이렇다 할 경제관련 일정으론 비정규직 대책 차관회의(15일), 소비자정책심의위원회(17일) 정도가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유고'속에 관심도 시들할 것 같다. 발표자료 가운데선 1월 국제수지(16일), 2월 고용동향과 어음부도율(18일) 정도는 눈여겨 봐야겠다. "힘은 뼈와 근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불굴의 의지에서 나온다." 인도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국회의장석을 탈환하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던 여야 의원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