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발로 뛰는 영업맨들은 '경기의 안테나'로도 불린다. 물건ㆍ서비스를 팔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현장을 누비다보니 경기 흐름을 빠르고 예민하게 파악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도 1년이다. 영업맨들이 현장에서 느낀 1년은 어땠을까. 한국경제신문이 연 '영업맨 좌담회' 참석자들은 "정치문제로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현장 경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며 "앞으로 경제에 힘을 쏟아 서민들의 얼굴에 팬 주름살을 걷어달라"고 주문했다. 좌담회에는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내 숙녀복 정장 판매점인 VOK의 김규상 사장(45),화장품 전문 체인점인 토다코사 명동점의 김경아 매니저(39), 현대자동차 최진실 과장(37), 삼성화재 리스크 컨설턴트(RC) 허근행씨(52)가 참석했다. [ 참석자 ] 김규상 < 두산타워 VOK 사장 > 김경아 < 토다코사 매니저 > 최진실 < 현대자동차 과장 > 허근행 < 삼성화재 리스크 컨설턴트 > ----------------------------------------------------------------- ◆ 김규상 사장 =월드컵 이후부터 매출이 뚝 떨어지더니 작년에는 최악의 상황이 됐다. 2000년과 2001년에 비해 매출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두산타워에서 흑자를 보는 매장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뜸해졌다. 경기 침체에다 신용불량자가 대폭 늘어난 것도 한몫하고 있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손님 지갑을 열게 만드는게 이렇게 힘들기는 처음이다. ◆ 최진실 과장 =요즘 자동차업계는 무이자 할부 판매나 할인 판매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차가 그만큼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차가 나오면 6개월 이상 인기를 끄는게 보통인데 지금은 한 달도 못간다. 신용불량 문제가 불거지면서 캐피털 회사 등을 통해 할부로 차를 구매할 수 있는 계층이 줄어들면서 현금 구입자가 많아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 김경아 매니저 =IMF 이전에는 화장품 전문매장 수가 전국적으로 2만개에 달했다. 하지만 지금은 1만개가 될까 말까다. 19년간 일하면서 요즘처럼 어려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업계 전체적으로 작년 매출은 2002년보다 30∼50% 줄었다고들 한다. 2∼3년 전에는 립스틱만 해도 메이커별로 사고, 맘에 안들면 바꾸곤 했는데 이젠 한 개만 산 뒤 다 쓰고서야 구매한다. 과거엔 기초화장용으로 3∼4개 제품을 쓰던 사람이 이젠 2개 정도로 줄였다. ◆ 허근행 RC =지난해 온라인 자동차보험이 인기를 끈 것도 경기 침체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 특히 보험료가 비싼 신규 고객들은 15%가량 저렴한 온라인 보험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베테랑 설계사들도 고객들이 '다른 회사 보험료가 더 싼 것 같다'고 나오면 설득하는데 애를 먹기도 한다. 안면만으로 영업하기는 힘든 시대가 됐다. 사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할때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은 사고 때의 보상 시스템이나 서비스 질인데 경기가 어렵다보니 '싼 보험료'가 더 어필하는 모양이다. ◆ 김 사장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만든 책임을 정치권과 정부에 묻고 싶다. 경제는 뒷전인 채 정치 싸움만 하는데 서민 경제가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대선자금 수사도 적당한 선에서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좋아질 것'이란 희망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일이라도) 붙잡지 않으면 실업자가 된다'는 강박감에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 최 과장 =노무현 대통령은 '2만달러 시대'를 얘기했다. 내가 보기엔 곧 '3만달러 시대'가 될 것 같다. 돈 없는 사람들이 도태하면 돈 있는 사람만 남을 것이고 그러면 평균소득은 쉽게 올라갈 것이다. 농담만은 아니다. 최근 에쿠스 그랜저XG 등은 더 잘 팔리고 아반떼 같은 차는 줄어들고 있다. 분배와 복지를 강조한 노 대통령의 철학과는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 허 RC =보험 영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계층을 만나는데 서민일수록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고 호소한다. 예전에는 건강보험 상품을 권하면 대부분 받아줬는데 최근에는 '요즘 힘들다. 나중에 들겠다'는 반응이 주류다. 경기 침체도 문제지만 사교육비에 드는 돈이 워낙 많아 보험에 들 여력이 없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 김 사장 =동감한다. 사교육비는 서민 가계를 무너뜨리는 주범이다. 사교육비 때문에 가처분 소득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가정을 많이 봤다. 이런 점에서 교육방송(EBS) 위주로 입시를 치르겠다는 정부 정책은 일단 환영한다. 특목고 활성화도 사교육비 절감에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 김 매니저 =주부들이 직장에 나가는 이유의 절반은 사교육비 마련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학원에서 반복하는 애들을 보면 '학원에 왜 보내야 하나'라고 반문한다. '이 돈이면 우리 가족 삶의 질이 훨씬 좋아질 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울며 겨자먹기로 학원에 보낸다. ◆ 최 과장 =요즘 우리 경제를 보면 '외양은 번지르르 하지만 안에서는 시체가 썩고 있는' 호화 무덤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서 분명히 썩고 있는데 정부는 좋은 것만 부각하는데 급급한 모양새다. 고름을 짜고 수술을 해야 할 문제에 미봉적인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최근 중국 상하이를 가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만 우왕좌왕하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 김 사장 =중국은 정말 큰 위협이다. 국내 하청 때 1만8천∼2만원인 재킷 공임비가 중국에선 3천∼4천원이다. 운송비를 포함해도 3분의 1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산업 공동화를 막을 도리가 없다. 우리가 중국으로 하청을 돌리면 당장 실업자 10명이 생긴다. 저렴한 중국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들다면 우리는 고급 기술을 보유토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 허 RC =산업 공동화는 청년층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취업자가 늘어야 소비도 증가하고 경제도 나아질 텐데 그러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 김 매니저 =지하철역에 가보면 멀쩡한 사람이 노숙을 한다. 돈 문제 때문에 전철에 뛰어드는 사람도 매일 생긴다. 이런 문제를 없애려면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며 결국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 김 사장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서민들의 얼굴에 주름살을 걷어내는 정책을 펼쳐줬으면 좋겠다. 지금 수출은 잘 되지만 내수경기는 꽁꽁 얼어붙었다. 경제 활성화와 함께 일꾼들이 우대받는 사회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정리=오상헌ㆍ김현석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