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하던 스위스 시계 산업은 1970년대 후반 붕괴 위기를 맞는다. 일본과 홍콩의 업체들이 정확하고도 싼 쿼츠(quartz:전자식 시계)로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했기 때문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스위스를 다시 세계 시계 강국으로 우뚝 세운 가치혁신 상품이 바로 패션시계의 대명사 스와치다. 스와치는 당시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세이코' 시티즌' 등이 서로 차별화하기 위해 각종 기능을 추가하는 경쟁을 벌일 때 전혀 다른 길을 택했다. 손목시계를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적인 제품에서 강력한 감성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션 액세서리로 재창조키로 한 것이다. 새 전략은 도출했지만 신시장을 창출하는 데는 전술이 필요했다. 거대 고개군(mass market)을 단기간에 장악하는 동시에 경쟁자들의 추격도 따돌려야 했다. 전통적인 독과점 이론에 따르면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을 경우 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생산량을 줄여 독점이윤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가치혁신기업은 이같은 전략을 따르지 않는다. 스와치는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전략적으로 가격을 책정(strategic pricing)했다. 당시 세이코, 시티즌 등의 가격은 75달러 수준. 스와치는 저가 선호 고객을 유인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빠르게 높이기 위해 스와치 값을 이들 제품의 절반 수준인 개당 40달러로 낮췄다. '시계' 하나 값으로 '액세서리' 두 개를 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스와치의 저가 전략은 그러나 결코 덤핑이 아니었다. 프로젝트팀은 전략적으로 책정한 가격으로부터 거꾸로 적정한 이윤을 실현할 수 있는 목표 비용(target costing)을 설정한 뒤 그에 적합한 생산시스템을 설계했다. 스와치는 생산, 조립설비의 자동화를 통해 이 과제를 완수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비용구조를 구축했다. 원가를 맞출 수 없게 된 경쟁자들이 추격을 포기하자 '무경쟁'의 신시장이 열렸다. 패션시계라는 새시장이 창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