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협정 타결을 목표로 지난달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정부간 협상이 시작됨에 따라 한·칠레 FTA에 발이 묶여 있던 FTA정책이 새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특히 올해에는 이미 정부 협상의 전(前)단계인 산·관·학 공동연구를 마친 싱가포르와도 정부협상 개시를 선언할 방침이어서 정부의 '통상블록 짝짓기'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본과 싱가포르의 경우 우리의 첫 FTA 협정 체결국인 칠레와 달리 농업 개방에 대한 부담이 덜해 협상 전개가 비교적 순조로울 것으로 보고 있다. ◆초라한 FTA 성적표 정부가 다른 국가와의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에 나서는 것은 GDP(국내총생산)의 무역의존도가 66%에 이르는 통상국가로서 새로운 통상질서의 한 축으로 떠오른 FTA 대세에서 낙오될 경우 국가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FTA 정책을 통한 지역주의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년 8월 현재 WTO에 보고된 FTA 발효 건수는 모두 1백84개.협상이 진행 중인 FTA만 따져보더라도 70여개가 넘는다. 현재 한국은 칠레와 합의된 FTA를 제외하곤 변변한 FTA 추진 실적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세계 교역규모 10위권 국가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통상 성적표'다. 최대 무역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이미 홍콩을 비롯 ASEAN(동남아국가연합)과 10년내 FTA를 발효키로 합의하는 등 아시아 교역의 주도권 장악에 한발 앞서가고 있다. ◆이해당사자간 갈등 해결이 우선돼야 올해 정부간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는 일본 및 싱가포르와의 FTA 협상은 향후 한국 정부의 FTA 추진 전략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될 전망이다. 일본과의 FTA 협상은 현재 선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한·중·일 FTA의 시발점으로,싱가포르와의 FTA협상은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는 ASEAN 국가들과의 FTA 추진에 새로운 동력으로 각각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칠레와의 FTA 추진 과정에서 보았듯 향후 다른 국가와의 FTA 추진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이해당사자간 갈등과 집단논리다. 한·칠레 FTA는 작년 2월 양국간 공식 협정 타결 서명후 농민단체 등의 집단행동과 거센 반발 등으로 국회 해당 상임위를 통과하기까지만 10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정부가 농업개방 부담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일본과의 FTA 추진 또한 한국의 상대적 취약 업종인 부품·소재 업종의 피해가 확실시되는데다 양국간 과거사 문제 등 정치적 돌발변수가 잠재하고 있어 최종 협상타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