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8개월 동안 논란을 빚어 온 "대기업그룹 금융회사의 계열사 의결권 행사" 금지 문제가 의결권 행사를 이사회를 통해 견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채 일단락됐다. 30일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의결권 행사를 단계적으로 제한,궁극적으로 완전 금지시키겠다는 합의가 나오긴 했지만 정확한 일정에 대한 언급이 없어 조만간 완전 금지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소버린 등 외국계 투자펀드들의 국내 기업에 대한 경영권 공격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힘들게 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경부와 재계의 '판정승' 정부는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4월 이후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시민단체와 재계,학계가 참가하는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방지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계속 열어왔다. 공정위와 시민단체 측은 의결권 허용이 지배력 확장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며 '완전 금지'를,재경부와 재계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며 '현행 틀 유지'를 주장해왔다. 공정위는 완전 금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쳐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 금융·보험사 85개를 대상으로 법에서 허용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막기 위한 의결권 행사 건수가 있는지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한 건도 경영권 방어와 관련한 의결권 행사가 없는 것으로 밝혀져 공정위가 힘을 얻는 듯했다. 그러나 소버린의 SK㈜ 경영권 위협과 외국 자본들의 금융기관 인수 과정에서 국내 기업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이런 상황에서 당장 의결권 금지는 어렵다는 데 공감했다"며 "때문에 금융회사 이사회의 사외이사 등이 계열사 의결권 행사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선에서 공정위 측과 합의를 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사회 의결권 의무화를 위한 법 개정 작업을 이르면 내년 상반기 중 마치고 하반기부터 시행한다는 목표다. ◆긴장하는 재계 재계는 당장은 아니지만 정부가 단계적으로 의결권을 폐지키로 합의한 사실 자체를 긴장 속에 받아들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외국 기업의 국내 기업에 대한 적대적 M&A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이 같은 정책을 실시하려는 것은 현실을 너무 모르는 탁상행정식 역차별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국 자본의 적대적 M&A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장치를 없애 국내 기업을 무장해제시키는 꼴"이라며 "출자총액 규제로 주식이 분산된 기업은 더욱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재벌 금융·보험사들에 자기 계열 주식보유 한도가 설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조치는 이중규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정위 관계자는 "일단 의결권 행사를 금지시키기로 합의한 자체가 큰 진전"이라며 "앞으로 관련 부처 협의를 통해 얼마의 기간에 걸쳐,얼마씩 한도를 줄일지를 정해 나갈 것"이라고 추진 의지를 밝혔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