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자유롭게 신규 투자를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놓고 산업공동화 현상이 해소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가당착입니다.출자총액제한을 비롯한 각종 투자제한 조치를 푸는 데서부터 산업공동화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초청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한 로버트 매송 미국 코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갑영 연세대 교수(동서문제연구원장)와 가진 대담에서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한 단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시장원리를 도외시하는 각종 행정규제부터 시급히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송 교수는 특히 한국 정부의 출자총액제한과 관련,"기업의 투자를 제한하는 정책을 시장개혁이라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대기업들이 추진해온 사업다각화에 대해 "다각화는 개별 기업이 모든 위험을 떠 안는 것보다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산업조직학회장을 맡고 있는 매송 교수는 한국의 산업정책에 관해서도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미국내에서 몇 안되는 한국 전문가로 통한다. ■ 로버트 매송 교수 .미국 코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1976년~현재) .미국 산업조직학회 회장(현재) .카터 행정부 반독점 규제위원회 위원 ■ 정갑영 교수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1986년~현재)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장(2000년~현재) .글로벌 이코노믹 리뷰 편집장(현재) .한국산업조직학회 회장 엮임(2002년) .............................................................................. ▲정갑영 교수=올 한햇동안 한국 경제가 전반적인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최근들어 수출부문을 중심으로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요즘 직면하고 있는 수출-내수산업,대기업-중소기업간 양극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매송 교수=세계적인 경기회복 추세에 힘입어 내년에는 한국 경제도 살아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회복의 속도입니다.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기 위해서는 투자가 뒷받침 돼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자본의 해외 유출현상이 심각해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봅니다. ▲정 교수=IMF(국제통화기금)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고 있는 현 정부의 시장개혁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무현 정부의 시장개혁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송 교수=공정위의 시장개혁 정책 중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이 출자총액제한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기업들의 투자를 제한하는 정책은 시장개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정부가 투자를 제한하기 위해 규제를 한다면 기업은 당연히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투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 교수=실제로 한국에는 최근 중국으로 이전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산업공동화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매송 교수=한국에는 투자규제를 비롯해서 다른 나라에 없는 규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규제들은 1970∼80년대 고도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유효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산업공동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기업들에 대한 규제완화가 필요합니다. ▲정 교수=한국 정부는 최근 신(新)성장동력 산업을 선정해서 미래 캐시카우(cash-cow)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송 교수=세계무역기구(WTO)체제내에서 정부가 신성장산업 육성을 위해 얼마나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70년대처럼 산업발전이 고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부 주도의 정책이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보다는 산업계 사람들이 산업의 변화와 전망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자본 시장이 자유화돼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어떤 산업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 교수=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경제중심국 구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매송 교수=한국이 공항이나 항구 등의 입지나 환경에서는 동북아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보지만 물류를 해상에 많이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면에서 다른 인접국가들에 비해 여러가지 제도 개선을 통해 해외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 교수=한국에서는 사업 다각화가 나쁘다는 인식이 많습니다. 대기업들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외환위기의 원인이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매송 교수=사업다각화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사업을 다각화해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risk pool)하는 대기업그룹체제와 개별 기업이 위험을 독자적으로 안고 있는 경우를 비교 분석해 보니 위험을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 대체로 기업에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외환위기는 재벌의 사업다각화가 아니라 자본자유화 과정에서 발생한 위험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외환위기전까지만 해도 한국 재벌은 주거래은행을 통해서만 금융거래를 했는데 자본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여러 은행에서 외화를 조달했습니다. 또 단기외자 도입이 자유화되면서 기업들이 여러 거래은행들을 통해 단기 대출을 많이 받았는데 이를 장기 투자에 활용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다각화된 기업들의 위험도가 증가할 수 밖에 없어 외환위기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정 교수=한국에서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지주회사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매송 교수=지주회사처럼 모든 재벌이 하나의 지배구조로 가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배구조는 개별 기업이 처한 시장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합니다. 특히 자본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기업지배구조는 기업에 가장 유리한 쪽으로 변화하게 돼 있습니다. ▲정 교수=앞으로 한국의 시장개혁정책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조언을 하신다면. ▲매송 교수=공정거래정책은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특히 동종시장에서의 기업결합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하고 기업간 담함도 억제해야 합니다. 증권관련 이슈는 금융감독원 쪽에서 보다 엄격하게 규제 관리하면 될 것입니다. 1986∼95년에 걸쳐 한국 기업 5백여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직도 한국 시장은 독점 지배력이 크고 경쟁은 약한 걸로 나타났습니다. 정리=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