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한 시중은행 본점. 장갑차 모양의 차량 10여대가 건장한 호송요원의 삼엄한 경계 속에 대기 중이다. 잠시 후 은행 보안문이 열리고, 정체 모를 부대자루들이 속속 차량으로 운반되기 시작한다. 자루의 크기는 시중서 유통되는 쌀가마니 정도. 무게는 40kg이 넘는다. 자루를 다 옮겨 실은 차량은 3인1조씩 요원이 탑승, 속속 은행문을 빠져나갔다. 이들의 행선지는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은행 지점들. 하루 업무에 필요한 시재(현금)를 수송하는 중이다. 현금호송업무 3년차인 형경원씨(33). 태권도 3단에 합기도 2단.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했고, 군복무 7년 동안 줄곧 보안과 경호업무를 해 온 이 분야의 베테랑이다. 형씨가 오늘 오전에 돌아야 하는 은행 지점은 10여곳. 이곳에 들러 필요한 시재를 풀어주고, 지점에서 본점으로 올라가는 시재와 중요 서류들을 챙겼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상징후가 감지됐다. 정체불명 차량의 미행이 인지된 것. 게다가 차량 안에 탑승한 사람이 소형 비디오카메라로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형씨는 즉시 일상 업무를 중단하고, 상황실에 이를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상황실은 경찰과 함께 현장에 출동, 문제의 차량을 확인했다. 확인 결과 문제의 차량은 모 방송국의 취재차량으로 밝혀졌다. 최근 현금수송차가 털리는 사건이 빈발하면서 관련 자료화면을 확보하기 위해 취재 중이었다.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었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생각하면 형씨는 씁쓸하기만 하다. “현금호송차량이 자주 털리면서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다. 심지어 내부자 소행으로 의심, 호송요원의 자질을 운운할 때는 분통이 치민다”며 “최근 사건들은 최소한 지켜져야 할 규정이 무시돼 일어났을 뿐 규정만 제대로 이행된다면 현금호송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형씨는 강조했다. 현금호송차량 안전수칙 제1호는 ‘절대 차량을 탑승자 없이 비우지 않는 것’. 3인이 1개조로 현금을 호송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2명이 현금을 운반하는 동안 1명은 차량을 지키도록 돼 있다. 지난 9월26일 포항에서 발생한 7억500만원 강탈사건은 이 같은 가장 기본적인 수칙을 무시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차량을 현금 운반장소에 정차시킬 때도 준수해야 하는 안전수칙이 있다. 먼저 정차장소의 안전성 여부를 확인한 뒤 시동을 끄지 않은 상태에서 문을 잠근 채 정차한다. 차량에서 현금을 꺼낼 때는 차량 문이 잠긴 것을 확인한 후 1명이 차량 주위에서 경계를 서고, 나머지 2명이 차량금고에서 현금을 꺼낸다. 현금호송차량이 싣고 다니는 품목은 다양하다. 현금뿐만 아니라 금괴, 보석류, 여행자수표, 각종 중요서류 등 보안이 요구되는 물품은 모두 취급한다. 특별한 보안이 요구되는 경우 5인이 1개조로 편성되며 방탄조끼까지 착용하고 업무를 수행한다. 호송요원의 기본 무장은 전기충격기와 가스총. 현재로서는 이 정도의 무장으로 충분하지만 향후 발생할지도 모르는 총기를 동원한 강탈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대책도 경찰과의 공조하에 마련 중이다. < 현금호송 시스템 안전 > ‘호송경비업무’로 경찰청에 등록돼 있는 현금호송업체의 직원 채용과정은 비교적 까다로운 편이다. 형씨의 경우처럼 각종 무술의 유단자여야 하며, 특수부대 군경력은 우대된다. 그리고 신용불량자가 아니어야 하며, 금전적 사고에 대비 주변 사람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 경찰전산망을 통한 신원조회는 기본. 퇴사 후에도 퇴사직원과의 연관이 의심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퇴사직원과 그 주변인물에 대한 신원추적에 나선다. 그리고 호송요원은 업무와 관련된 어떠한 정보도 주변 사람에게 누설하지 말아야 하는 의무규정이 있다. 장갑차 모양의 현금호송차량도 특수하게 제작된 특장차이다. 이전에는 주로 외국에서 수입해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국내에서도 제작된다. 현금호송차량의 차체는 전투용 장갑차에 쓰이는 특수합금으로 만들어져 웬만한 총격에도 파손되지 않는다. 차량 바퀴는 터지지 않는 타이어를 장착하고 있다. 차량잠금장치는 지문인식장치를 포함, 3중으로 이뤄져 있어 침입이 쉽지 않다. 그리고 모든 차량에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치추적장치(GPS)가 장착돼 있어, 차량 도난시에도 추적이 가능하다. 특장차 제작비용은 6,000만~8,000만원선. 수입차량의 가격은 1억원이 넘는다. 그러나 비싼 비용 때문에 이 같은 차량이 널리 보급되지 못하는 실정. 몇몇 중견업체에 50여대 미만의 특수차량이 있을 뿐 대부분 현금호송차량으로는 승합차를 임시방편으로 개조한 차량이 맹활약(?)하고 있다. 최근 강탈사고는 승합차를 개조한 차량이나 금융기관 직원들이 직접 몰고 다니는 일반 차량에서 주로 발생했다. 포항 사건의 경우는 호송직원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금융기관의 안전불감증도 이에 못지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초 경찰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만7,726개소 금융점포 중 CCTV의 경우 점포 내부에는 거의 설치가 돼 있었으나 지상ㆍ지하 주차장 등 범죄가 빈발하는 장소에는 대부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자체 경비인력은 대부분 은행(95.7%)에는 배치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제2금융권과 우체국 등에서는 20%의 점포에만 자체 경비인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현금호송 전문업체를 이용하는 점포는 전체의 11.2%에 불과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제2금융권 점포들은 규모가 영세하다는 이유로, 은행 점포들은 안전에 대한 불감증 때문에 현금수송에 관한 안전원칙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최근 잇단 강탈사고로 경각심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안전의식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 업체 난립으로 출혈경쟁 > 2002년 말 현재 경찰청에 등록된 현금호송업체는 모두 61개사. 금융기관의 현금호송업체 이용빈도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회사가 작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과당경쟁은 당연한 결과다. 지난 9월 한 공공기관에서 있었던 현금호송업체 선정과정은 업계의 과당경쟁의 실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공공기관은 최저입찰가 낙찰 방식으로 현금호송 서비스업체를 선정했는데 3만원이 조금 넘는 낙찰가를 써넣은 업체가 최종 선정됐다. 입찰에 참여했던 경쟁업체 관계자는 “수억원에 달하는 현금이나 귀중품을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명의 전문요원과 특장차 운행은 물론 사고에 대비한 보험도 들어야 하는데 용달차 운임수준인 3만원으로는 이윤은커녕 비용의 절반도 커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같은 상황은 현금호송의 안전성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정규직 대신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임시직 직원을 보다 많은 현장에 투입하고, 특장차 대신 개조차량을 이용하는 상황이 늘면서 그만큼 사고에 대한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한 현금호송업체 임원은 “현금호송의 안전은 직원의 자질과 안전의식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데 현재와 같은 출혈경쟁 구도에서는 우수한 인력확보는 물론 직원교육에도 투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고 밝혔다. 오전에 은행 지점에서 수거한 시재와 중요 서류를 본점에 입고한 시간은 오후 1시. 형씨는 늦은 점심을 먹고 오후 업무에 투입된다. 오후 업무의 활동무대는 대형 할인점. 할인점의 체인망을 돌며 시재와 서류를 보급하고 매출현금을 회수해 은행에 입금시켰다. 형씨는 “모든 경제활동에서 현금이 혈액이라면 나의 업무는 그 혈액을 나르는 혈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일이 힘들고 보수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경제를 돌리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힌다. 형씨가 오후 업무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한 시간은 오후 7시께. 야간호송업무를 위해 출동하는 근무조에 차량을 인계한 형씨의 일과는 이렇게 저물었다. 최선호 기자 sunny@kbizweek.com ----------------------------------------------------------------- [ 노무현 정부 경제정책 집중 분석 ] < 주택보유세 > 부동산을 팔아서 남긴 차익에 부과하는 양도소득세와 보유단계에서 부과하는 재산세 및 종합토지세를 대폭 올려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대책이 시장에서 상당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유세 개편방안이 발표된 직후 서울 강남지역의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급락세를 보인 주택가격은 인근 중대형 아파트와 다른 지역으로 하락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이번 대책은 강남 등 투기지역을 위주로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한 다주택 소유자들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투기 목적으로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한 사람들은 내년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세금을 떠안아야 한다. 이번 대책에 세제, 금융 등 여러가지 수단들이 동원된데다 강도 역시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인터넷 등에서 보이는 일반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못하다. 일부 사람들은 이번 대책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집값이 1억원 이상 올랐는데 보유세를 100만원 올리는 것이 말이 되느냐. 보유세를 3~4배 올린다고 선전하는 것은 수치놀음일 뿐 주택가격 상승분과 비교하면 너무나 적은 금액이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주택가격 상승으로 발생하는 평가차익에 부과하는 세금은 보유세가 아니라 ‘토지(또는 주택)초과이득세’다. 노태우 정부 시절에 도입됐으나 미실현 이득에 대한 세금부과라는 이유로 위헌판정을 받았다. 투기꾼들을 응징하기 위해 초과이득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국민정서에는 동의하지만 초과이득세의 관점에서 보유세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보유세란 건물분에 부과되는 재산세와 토지에 부과되는 종합토지세를 말한다. 한정된 재원인 토지와 주택을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세금이고, 누진세율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보면 공개념이 들어가 있다. 이번에 발표된 보유세 개편은 ‘투기꾼 응징’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지나치게 세율이 낮고 시장가격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보유세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측면에서 평가해야 한다. 건물가액이 시장가격에 동떨어지고 과세표준 현실화율도 낮아 강남 아파트의 재산세가 다른 지역 아파트보다 적은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것이다. ‘값비싼 지역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칙이 적용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비거주 다주택 보유자에 대해서는 7%의 단일세율을 부과하는 방안은 투기꾼들을 겨냥한 것이다. 아파트 가격이 1년에 수억원씩 오른다면 세율 7%가 큰 금액이 아닐 수 있으나 통상적으로 보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금액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우려해야 할 대목은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어떤 이유에서든 후퇴할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대책을 책임진 고위 경제관료들 중 상당수가 서울 강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인신공격성 비판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 판단의 기준은 ‘행위’이지 ‘특정한 조건’일 수는 없다. 강남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것은 마녀사냥으로 국민정서에 영합하려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현승윤ㆍ한국경제신문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