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 대주주로 올라선 금강고려화학(KCC)이 최근의 전격적인 주식 매집에 대한 입장을 처음으로 밝혔다. 공식 기자회견은 없었지만 정상영 명예회장이 직접 손질해 배포된 보도자료는 한마디로 KCC를 포함한 범(汎)현대 일가가 사실상 현대그룹을 '관리'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당장 새로운 경영진을 파견하지 않고 현정은 회장 중심의 경영체제를 유지하겠지만 '올바르고 투명한 경영을 할 때'라는 조건부로 '승인'하겠다는 뉘앙스도 담겨 있다. KCC 측은 이날 입장 발표를 통해 항간에 퍼지고 있는 현 회장 측과의 갈등설을 잠재우고 모든 사태를 일단락짓겠다는 입장이지만 졸지에 2대 주주로 떨어진 현 회장 측이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 '대주주 역할론'의 의미 KCC는 이번 주식 매집이 정상영 명예회장의 뜻이 아니라 범 현대가의 공감대 속에서 일관되게 추진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정몽헌 전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위기에 처한 현대그룹을 지원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정 명예회장의 경우 과거 정몽헌 회장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때 보유 주식을 담보로 제공해 줬다는 일화도 공개했다. 하지만 이날 KCC가 내세운 '대주주 역할론'은 현대그룹의 현실적인 대주주로서 경영권을 장악했음을 선포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동시에 향후 범 현대가의 경영권에 배치되는 움직임이 있을 경우 이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 현 회장 체제는… KCC는 "기본적으로 현대그룹의 정상적인 업무집행에 일일이 간여할 의도는 없으며 현정은 회장 체제를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이 현 회장의 영속적인 경영권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는다. KCC는 몇가지 단서를 달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우선 "현 회장이 향후 현대그룹의 정상화와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현 회장의 역할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또 "현 회장이 올바르고 투명하게 회사경영에 임한다면 이를 적극 지원할 수 있다"는 문구는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지원을 끊는 것은 물론 그 이상의 조치도 취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KCC 또는 범 현대가가 구상하고 있는 현 회장의 역할은 제한적이고 과도적인 수준에 그쳐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 정 명예회장 "업무보고 받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CC는 당장 현대그룹에 새로운 인물을 파견할 뜻은 없다고 밝혔다. 현 회장뿐만 아니라 현 전문경영인 체제도 당분간 유지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은 앞으로 대주주의 일원으로서 계열사들의 업무보고를 받을 계획이라고 KCC측은 밝히고 있다. KCC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이 서서히 업무현황을 파악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모자라고 미진한 부분은 지원책을 마련하게 될 것이고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경영진 파견도 자연스럽게 검토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