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돈을 찾아라.' 깊은 바다에 가라앉은 보물선이나 금은보화가 산더미처럼 묻혀 있는 지하동굴 따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열차 행렬이 잠시도 끊이지 않고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전철역을 놓고 일본 언론이 부르는 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철역 곳곳에 숨겨진 비즈니스 기회에 주목하자는 뜻에 빗대서 갖다붙인 표현이다. 철도 선진국 일본의 전철역은 단순히 열차만 타고 내리는 곳이 아니다. 이용 승객수가 제법 많은 역은 대부분 거대한 쇼핑타운이나 마찬가지다. 상업시설은 물론 병원, 보육원, 우체국, 금융기관에 이르기까지 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이 고루 갖춰져 있다. 승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서민생활에 도움을 주기 위한 다목적 카드의 성격으로 들어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들 시설이 노리는 타깃 중 하나는 '돈'이다. 역을 오가는 하루 수만명의 유동인구가 뿌리는 돈을 겨냥하고 들어선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철역 구내와 주변 일대가 초특급 상권으로 꼽히는 이유를 고객수의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데다 일기 변화에 관계없이 안정적 매출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매력에도 불구, 일본의 전철역들에서는 또 다른 금맥을 캐기 위한 철도회사들의 아이디어 싸움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그리고 장기 불황에 따른 실업자 증가로 승객수가 해마다 뒷걸음질치자 역들이 갖고 있는 비즈니스 거점으로서의 위상에도 타격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JR동일본철도의 도쿄 우에노역은 지난해 2월 역 구내를 획기적으로 뜯어 고치며 쇼핑몰을 방불케 할 정도로 꾸며놓아 많은 화제를 뿌렸다. 중앙 개찰구 인근에 70여년간 버티고 있던 역장실 등 사무지원실을 들어낸 후 객석 112석의 대형 카페를 만들었다. 대신 역장실은 플랫폼 끝의 후미진 곳으로 밀어냈다. 우에노역의 대변신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소형의 구내매점만 몇 개 있던 자리에는 서점, 미술관, 레스토랑 등 잔뜩 멋을 낸 40여개의 점포가 들어섰다. 우에노역 관계자는 이와 관련, "장사하기 가장 좋은 목에 사무지원시설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밝혀 시설 재배치가 철저하게 비즈니스 우선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플랫폼에 이색 간이주점까지 등장 도쿄 도심과 외곽의 하치오지시를 연결하는 게이오선의 열차에서는 하루 4~5회씩 카레빵의 향긋한 냄새가 승객들의 코를 자극한다. 게이오전철이 지난해 7월부터 역구내에서 팔기 시작한 카레빵 때문이다. 열차가 사사즈카역에 정차하면 카레빵이 담긴 보온팩을 어깨에 짊어진 여성 승객이 차에 오른다. 그리고 서너 정거장 떨어진 메이지대학역에서 하차한 후 종종걸음으로 플랫폼 한쪽에 설치된 카레빵 코너로 달려간다. 카레빵 코너의 면적은 약 1.5평이며 점원은 단 한명. 그러나 1개 180엔씩 하는 빵이 하루 500~600개씩 거뜬히 팔려나간다. 빵 코너 설치는 순전히 게이오전철의 자체 아이디어에 따른 것. 역구내의 활용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머리를 짜낸 결과다. 빵 코너는 손바닥 정도의 크기에 불과하지만 빵을 직접 제조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공급받으니 전혀 불편하지 않다. 빵은 사사즈카역 구내의 다른 점포에서 만들어낸 후 곧바로 아르바이트생이 전철을 타고 와 전해주는 식이다. 게이오전철 사업추진부의 오사토 고지 과장은 "귀갓길에 빵 냄새를 맡으면 자신도 모르게 지갑 단속이 느슨해지는 승객이 많은 것 같다"며 "공간활용과 수익극대화에서 모두 만족할 만한 효과를 올린 케이스"라고 자랑하고 있다. 오사카 일대를 운행하는 난카이전철의 난바역에는 지난 7월부터 회전 생선초밥 점포가 등장, 또 하나의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점포의 특징은 홋카이도 산지에서 직송해온 신선한 재료만을 사용한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 때문에 일반 생선초밥 점포보다 값이 다소 비싸도 승객들로부터 큰 호평을 얻고 있다. 허기를 느끼는 퇴근길에 개찰구 바로 앞에서 산지 별미를 맛볼 수 있으니 이를 싫어할 승객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것이 전철회사측의 주장이다. 같은 난바역을 오가는 긴테쓰전철의 플랫폼에서는 이색적인 간이주점이 주당들의 발길을 잡아끌고 있다. 개찰구를 빠져나가면 바로 눈에 들어오는 자리에 설치된 이 주점의 인기메뉴는 술 한잔과 안주 한가지씩을 묶어 내놓는 세트메뉴. 가격은 세트당 370엔이고 10명이 들어서도 어깨가 부딪칠 만큼 비좁은 공간이지만 오후 3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줄잡아 150명 이상의 주당이 다녀간다. 전철회사측은 "열차만 타면 된다는 안도감에 주당들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며 "서서 마시는 불편이 따르지만 값이 싸서 고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역구내를 거점으로 노다지를 캐고 있는 비즈니스 아이템 중 최근 부쩍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슈퍼마켓. '세이조 이시이'는 JR동일본의 에비스역 구내에 지난 97년 점포를 처음 개설한 후 대성공을 거두자 이제는 3개 노선, 10개 역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역구내 슈퍼마켓의 가장 큰 매력은 집객 파워가 왕성하다는 것. 유동인구가 끊이지 않다 보니 별도의 전단지를 돌리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상품구색에 큰 신경을 안 써도 된다고 세이조 이시이측은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다른 슈퍼마켓들이 불황에 허덕일 때도 지난 98년 대비 매출이 66% 증가했다고 지적, 이는 역구내 슈퍼들이 외형 증가에 톡톡히 효자 노릇을 한 덕이라고 털어놓았다. 1,000엔만 내면 10분 안에 머리손질을 끝내주는 초간편 이발 서비스도 역구내에서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비즈니스다. 대표적 체인업체인 QB하우스는 출퇴근길의 샐러리맨을 중심으로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최근 5년간 역구내 커트점을 무려 80개점으로 늘렸다. 열차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에 1,000엔짜리 지폐 한장으로 머리를 깎을 수 있는 점이 큰 매력이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일반 이발소의 경우 한번 이용에 3,000엔 이상을 주어야 하는 곳이 수두룩한데다 주말에 따로 이발시간을 낼 필요 없이 귀갓길에 머리를 자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샐러리맨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철도회사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역 구내의 돈맥 캐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이유를 입지조건 및 사회환경 변화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역과 얼마나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가 부동산의 입지조건을 결정하는 주요 잣대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개찰구 주변은 그야말로 '초특급' 명당이 아니냐는 것이다. 더구나 역사, 대합실 등 주변 인프라가 완벽하게 들어선 상태에서 매장만 설치하면 되니 이를 그냥 놓아둘수록 손해라고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에 따른 부작용으로 철도 승객이 제자리걸음을 걷거나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도 철도회사들이 부대사업에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일본 철도회사들은 지금까지 철로를 새로 깔고 주변 부동산을 개발한 후 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을 세우면 저절로 성공궤도를 달리는 등식을 당연한 결과로 누려왔다. 그러나 버블 붕괴 후 불어닥친 장기불황과 후유증은 성공의 등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역구내와 주변을 일대로 한 돈맥 캐기는 앞으로도 열기를 더해갈 가능성이 크다. JR동일본 사업창조본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 철도 승객만도 하루 600여만명에 달한다"며 "경영난이 심해질수록 모든 회사들이 이 같은 자원을 방치할 리 없다"고 말했다.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