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LG 현대ㆍ기아차 그룹 계열사 자금담당 임원들의 중요 임무중 하나는 매일매일 외국인 지분변동 상황을 체크하는 것이다. 이들 그룹 뿐만이 아니다.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에 상장(등록)된 기업들은 외국계 펀드들이 혹시 자사 주식을 사들이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LG의 경우 일부 외국계 펀드가 주식을 꾸준히 사모으는 게 체크돼 한때 바짝 긴장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상의 이현석 상무는 "외국계 펀드들이 워낙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어 경영권 방어에 신경을 쓰느라고 본연의 경영활동에 전력을 쏟기 어려울 정도라는 이야기를 기업인들로부터 수없이 듣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투기자본의 공격으로부터 국내기업이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 적대적 M&A에 노출된 토종기업들 삼성 LG 등 10대 그룹의 주식시가 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7일 현재 △삼성그룹 53.3% △SK 41.5% △현대차 40.6% 등 모두 43.3%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경영권 향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대주주만 봐도 홍콩계 펀드인 JF자산운용 등 단일 외국인들이 △현대산업개발 15.0% △SK 15% △LG전선 9.6% △삼성전기 8.1% △삼성전자 6.4% △현대차 5.6% 등 1백20개 상장사에 대해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상의 이경상 기업정책팀장은 "삼성전자 현대차 등에선 총수일가의 지분율보다 외국인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더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현대차는 27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지난 23일 현대차 지분 0.42%(91만주)를 추가로 인수, 지분율을 4.40%에서 4.82%로 높였다고 공시했다. 정 회장이 다임러 크라이슬러의 지분 추가 매입에 대비, 경영권 방어에 나선 것.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들은 지분 추가확보에 따른 자금압박을 받는 것은 물론 공정거래법상 각종 규제로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등 불안한 경영환경에 노출돼 있다. ◆ 선진국의 적대적 M&A 방어 장치 미국에선 80년대 적대적 M&A가 성행하자 델라웨어 일리노이 등 25개주가 '반기업인수법(Anti-Take over Law)'을 만들었다. 기업들이 적대적 M&A에 대항, 이사회 결정만으로 신주를 발행해 인수자를 제외한 모든 주주에게 시가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한 '독약처방(poison pill)' 조항이 대표적이다. 이 조항이 발동되면 주식인수비용이 몇배로 늘어나 적대적 M&A가 어렵게 된다.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제도도 많이 쓰인다. 미국 포드사는 대주주가 일반주식보다 의결권이 16배인 주식을 포함해 7% 지분만으로 40%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 계열인 SAAB의 대주주는 최고 1천배까지의 의결권 행사가 가능한 '황금주'를 갖고 있다. 재계가 외국인에 의한 그린메일(경영권이 취약한 대주주에게 비싼 값으로 보유주식을 되파는 일)이나 적대적 M&A에 대항할 수 있도록 관련제도를 정비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구학 기자 c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