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잘못’ 판결나자 경쟁체제 돌입 뉴욕에 살고 있는 마이클 무어씨는 최근 집에 초고속인터넷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까지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했지만 속도가 느려 초고속인터넷서비스에 가입하기로 한 것이다. 무어씨는 케이블 인터넷이 다른 초고속인터넷보다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케이블 인터넷을 설치하기로 결심했다. 케이블 인터넷에 가입하려고 회사를 찾아보던 무어씨는 새로운 사실을 한가지 알게 됐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단 한군데뿐이란 것이다. 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할 때는 여러 인터넷 서비스 회사(ISP) 가운데 마음에 드는 곳을 고를 수 있었지만 케이블 인터넷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지역의 케이블TV 사업자가 독점적으로 케이블 인터넷까지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이블 인터넷 가격도 예상보다 비쌌다. 전화접속은 한달에 20달러 내외였지만, 케이블 인터넷은 50달러를 훨씬 웃돌았다. 무어씨는 “케이블TV 사업자가 독점적으로 케이블 인터넷을 공급하고 있어 가격이 비싼 것 같다”며 “소비자들이 안정적인 서비스를 저렴하게 사용하려면 경쟁체제가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무어씨의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케이블TV 사업자가 독점적으로 운영해 온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가 경쟁체제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최근 케이블 인터넷에 대한 케이블TV 사업자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한 연방통신위원회(FCC)의 규정이 잘못됐다는 판결을 내렸다. FCC는 지난해 케이블 인터넷을 ‘정보서비스’로 규정, 케이블TV 사업자의 독점권을 인정했다. ‘통신서비스’로 분류되는 전화는 경쟁사에 자사 회선을 쓸 수 있게 공개해야 한다. 예컨대 AT&T가 갖고 있는 회선을 경쟁사인 버라이존이 임대해 소비자들에게 전화서비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연방항소법원은 판결에서 케이블 인터넷도 통신서비스이며, 따라서 전화회사들이 따르고 있는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케이블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케이블TV 사업자는 자사의 네트워크를 경쟁회사에 제공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인정한 FCC의 규정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FCC측은 “케이블 인터넷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이 인프라 투자를 늘릴 의욕을 갖게 하려면 혜택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설명이다. 연방항소법원의 판결로 소비자들은 한결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됐다. 법원의 판결이 효력을 발생하면 여러 케이블 인터넷 사업자 가운데 자신의 입맛에 맞는 회사를 고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업자들간의 경쟁이 이뤄지면 소비자들의 혜택이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그동안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에 불만을 가져온 소비자들은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을 두손 들어 환영하고 있다. 사실 케이블 인터넷 사용자들은 비싼 이용료를 포함해 불만이 많았다. 그동안 딱히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불만을 삭혀야 했다. 실제로 지난 9월 태풍 이자벨 영향으로 메릴랜드주 일부 지역에서 전기와 케이블 인터넷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전기는 이틀 만에 복구됐지만 케이블 인터넷은 무려 19일이나 걸렸다. 연방항소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실질적인 혜택을 얻기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소비자들의 환영과 달리 FCC는 여전히 법원 판결에 불복할 의사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FCC는 법원의 판결 후 바로 항소할 의사를 밝혔다. FCC는 “법원이 케이블 인터넷에 대한 FCC의 규정이 주는 긍정적 효과를 간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FCC의 항소를 넘지 못하면 케이블 인터넷 시장 개방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국의 초고속인터넷은 케이블 인터넷을 포함, 전화선을 이용한 DSL과 인공위성 인터넷 등 다양하다. 케이블 인터넷 영향으로 지난 5년새 인터넷서비스회사 4분의 3이 문을 닫았다. zeneca@unitel.co.kr